법계(法界)의 성품을 관(觀)하라.

2011. 12. 5. 19:29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도봉산 천축사. 2011.11.14.>

 

<화엄소>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였다. 

경계가 오직 마음임을 모르기 때문에 허망한 경계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 또 바로 결정된 성품이 없으므로 바야흐로 만 가지 경계를 만든다고 하는 것을 비유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의 성품이 이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법계의 성품을 관(觀)해야 한다는 것은 곧 진여의 이치(원리,바탕)를 관하는 것이고, 일체를 오직 마음이 만든다는 것은 곧 유식(唯識)의 현상을 관하는 것이다.

모든 깨달은 부처들은 이치(원리,바탕)로써 유식의 성품을 관하는 방법을 써서 유식의 성품을 증득하여 성불하는 바탕으로 삼고,

중생은 현상으로써 유식의 모습을 관하는 방법으로써 유식의 모습에  통달하여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문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화엄연의>에서 "진실로 한 문장의 깊고 오묘한 이치로 무량한 뜻을 다 거두며, 하나의 게송이 갖는 공능(功能)으로 지옥고를 타파할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내가 지닌 많은 법 가운데의 한 문장 한 구절이라도 전륜왕의 자리를 버리고 구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일체의 소유물을 버리고 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풀이하여 "여기서 말하는 한 문장 한 구절의 하나는 하나로써 일체를 통하는 하나이므로 법성의 개념에 맞추어서 말한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찬령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경조지방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왕씨이며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본래 행동이 바르지 않아 일찍이 좋은 일을 짓지 못하다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 그는 지옥사자 두 사람에게 끌려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지옥문 앞에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의 이름은 지장보살이었다. 지장보살은 그에게 하나의 게송을 암송하도록 하였다.

 

세상에 계시는 모든 부처를 

중생이 분명히 알고자 한다면

법계의 성품을 관해야 한다.

모두 다 마음이 만들었음을.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보살이 이게송을 전수하며, 그에게 " 이 게송을 외울 수 있으면 지옥의 고통을 타파할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왕씨는 지장보살의 이야기를 듣고 게송을 외워서 지옥에 들어가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이 사람에게는 무슨 공덕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지옥사자는 "오직 하나의 사구(四句) 게송만을 받아 지녔을 뿐입니다."하고 대답하면서 지장보살과의 일을 전부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이 사람을 지옥에서 나가도록 하였다.

 

또 이 게송을 암송할 때 이 소리를 들은 고통받던 사람도 모두 해탈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죽은지 삼일 후에 소생하였으나 이 게송을 기억하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일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지장보살에게 받은 게송이 <화엄경> 야마천궁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운집하였을 때 설해진 각림 보살의 게송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뜻은 지옥도 마음이 만들었음을 밝혀, 마음이 만들어 낸 부처나 지옥이 본래 공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 마음을 관한다면 곧바로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남을 알아야 한다. 지옥을 타파할 뿐 아니라 십법계(十法界)를 일시에 타파한다. 참다운 공으로 하나의 진리인 법에 들어가므로 평등한 참법계로서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

 

이것은 묘한 기술과 신통으로 다른 세력을 빌려 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 마음의 불가사의하고 신묘한 힘을 체험할 수가 있다.

이 경지는 높고 높아 더 높을 것이 없으며, 깊고 깊어 더 깊을 것이 없으며, 늘려도 늘어나지 않으며, 쪼그려뜨려도 쪼그라지지 않으며, 광범위하게 나타나나 어떤 모습이 없으며, 확 드러나더라도 어떤 자취가 없으며, 있으면서 영원하지도 않으며, 없으면서 단멸하지도 않으며, 바탕을 비추는 작용이 낱낱이 드러나나 성품에 칭합하여 널리 두루해서 만물에 미묘하게 작용하므로 신(神)이라 하기도 하고, 일체를 품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라 하기도 한다. 

전체를 통괄하여 싸안고 거두며 하나로 통하면서 변화시킴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일체를 비추는 작용 속에 있으면서 지칠 줄 모르니, 마치 밝은 거울에 비추이는 그림자와 같고, 인연에 응하여 작위(作爲)가 없으니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다.

모난 곳에 있으면 모난 모습이 분명하고, 둥근 데에 있으면 둥굴고 부드러운 모습이 나타난다. 깨달음에 있으면 깨달아서 모든 부처를 이루고, 미혹한 데 떨어지면 미혹하여 중생이 된다. 움직이는 흔적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나 본래의 마음 자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宗鏡錄(明樞會要)-

 

                                                                                        <2011. 11.11. 동네 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