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의 비밀장(秘密藏)

2011. 8. 29. 19:58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제1話, 열반경의 비밀장(秘密藏)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가섭보살이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불과 세존께서 비밀로 감추어 둔 것(비밀장)이 있다 하셨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불 세존의 말씀이야 은밀하지만 은밀히 감춰 놓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술장이의 꼭두각시와 같아서 사람들은 움직이는 꼭두각시는 볼 수 있지만 그렇게 조작하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불법이란 그렇지 않아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얻게 해주는데 어떻게 세존께서 비밀로 숨겨 놓은 것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가섭을 칭찬하였다.

"착하고 착하도다,선남자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나 여래는 비밀로 숨겨 놓은 일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마치 가을 하늘에 둥근 달이 뜨면 그지없이 맑아 막힐 것이 없어서, 누구나가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내 설법도 그러하여서 숨김없이 모두 드러내 청정하고 감춘 것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서 비밀로 숨겨 놓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모두 통달하여 숨긴 것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 또한 말이 없다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말귀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 이때 비록 말이 있다 하여도 실제로는 말이 없는 것과 같다. 내 설법도 마찬가지여서 그 말뜻을 알지 못하면 비밀스런 말이라 하니, 비록 말을 하여도 중생이 알지 못하는 까닭에 말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석두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말을 통달하되 모름지기 종지를 깨달아야 하니, 스스로 격식을 세우지 말라."

 

약산 유엄스님(748~828)스님은 말하였다.

"다시 잘 살펴보라. 말을 끊어버릴 순 없다. 내 이제 너희를 위하여 이 말을 하는 까닭은 말없는 그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정경 혜릉(854~932)스님은 말하였다.

"28대 조사들이 모두 마음 전하는 설법을 하였지 말 전하는 설법을 하지 않았다. 말해보라.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만일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말이 없다면 어떻게 '통달한 자'라 이름할 수 잇겠는가?"

 

또한 운문(雲門)스님은 말하였다.

"만일 이 일이 말에 달려 있다면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를 놓고 어찌 말이 없다 하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말하겠는가? 만일 배워서 깨우치는 지혜에 의지한다면 10지성인(十地聖人)정도의 경지를 얻는데 그칠 뿐이니, 그들은 구름 일듯 비 쏟아지듯 유창하게 설법하여도 오히려 성품을 봄(見性)에 있어서는 얇은 천으로 가리우고 보는 격이라는 꾸지람을 부처님께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一切有心)고 하지만 저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 불을 이야기한다 하여 그의 입에 불이 붙은 일이 있었는가?

나는 항상 "납자들이 이점에 투철해야 비로소 제불은 설법한 일이 없음을 알아 법을 설하는 법신(言說法身)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법을 설하는 법신이란 무엇일까?

"머리 잘린 뱃사공이 양주로 내려 가도다" (斷頭船子下楊州)

 

제2話, 4가지 마음의 체험.

현사사비(玄沙師備 : 835~908)스님이 산에서 나무를 하는데, 곁에 있던 스님이 소리쳤다.

"스님 ! 호랑이 좀 보시오."

스님은 호랑이를 본후 그 스님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너로구나."

 

영윤(靈潤)스님은 산길을 걷다가 산불을 만났는데 불길이 세차게 번져오자 함께 길을 가던 이들은 모두 피하였지만 스님만은 평소처럼 평안히 걸으며 말하기를, "마음 밖에 별다른 불은 없다. 불이란 실제로 마음에서 일어난다." 고 하고, 또 불은 도망할 수 있지만 면할 수는 없다"고 하더니, 불길이 다다르자 휩싸여 죽고 말았다.

 

엄양(嚴陽)스님은 홀로 산사에 살았는데 뱀과 호랑이가 스님의 손바닥 위에 놓인 먹이를 먹었다.

또한 귀종사(歸宗寺)의 지상(知常)스님이 풀을 베다가 뱀을 죽이자 곁에 있던 스님이 보고서는 "오래전부터 귀종사의 명성을 들어 왔는데 오늘 정말 포악한 중 하나를 보는군." 하니, 지상스님은 "네가 포악하냐, 내가 포악하냐?"하였다.

 

내 듣기로는 반야에 가까와지려면 마음으로 네 가지를 분명히 경험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事: 작용)을 깨달음, 리(理: 본체)를 깨달음, 事와 理를 동시에 깨달음, 事와 理를 동시에 벗어남을 말한다.

선문(宗門)에는 또 네 가지 장봉(四藏鋒: 암두전할 스님이 제안한 수행의 경지를 검토하는 기준, 위의 네가지 내용과 비슷함)이라는 활용이 있다.

앞의 반야에 가까와 지는 것으로 자신을 닦고 뒤에 말한 장봉을 활용으로 중생을 지도한다.

 

제三話, 머무는대로 나타나는 선과 악

노안(老安: 582~709)국사가 말하였다.

"<금강경>의 '머무는 바없이 마땅히 그 마음이 난다(應無所住而生其心)'고 한 가운데 '머무는 바 없는 것'이란 색에도 머물지 않고 소리에도 머물지 않으며, 미혹에도 머물지 않고 깨달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체(體)에도 머물지 않고 용(用)에도 머물지 않음이다.

'그 마음이 난다'라는 말은, 일체 법 그대로가 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선에 머물러 마음을 내면 선이 나타나고, 악에 머물러 마음을 내면 악이 나타나서 본심은 숨어 버리게 되니, 머무는 바없으면 시방세계가 오로지 한 마음일 뿐이다."

 

그러므로 조계스님의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나부끼는 것도 아니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진실로 알수 있겠다.

 

또한 수산주(修山主:당나라시대 사람)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바람 부니 마음이 나무를 흔들고

구름이 피어나니 성품이 티끌을 일으킨다

만약 오늘의 일을 밝히려 한다면

본래의 사람을 어둡게 하리라.

風動心搖樹 雲生性起塵

若明今日事 暗却本來人

 

                                                                 -林間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