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노자는 누구이며, 도덕경은 어떤 책인가?

2011. 3. 29. 20:44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노자가 난세를 피해 서쪽으로 가던 중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그곳을 지키던 관리 윤희(尹喜)가 도를 물어오자 즉석에서 5천자를 적어준 것이 오늘날의 [노자도덕경]이라고 전해져 오지만,---->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82회:]

 

1.노자의 생애와 <노자>라는 책.

원래 <노자>는 책 이름이며, 동시에 <노자>를 지은 사람이름이라고도 한다.

노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 <노자신한열전(老莊申韓列傳>에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후세 도가들의 저서 속에는 노자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있으나, 모두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한다.

노자의 생애에 관한 기록으로서 그래도 가장 신빙성있는 것이 <사기>이나, 사실은 <사기>의 기록도 많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노자가 어느시대에 살았는지, 어떤 인물인지, <노자>라는 책의 원저자인지 명확하게 기록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사기>의 <노자열전>에 나오는 전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여향 곡인리(曲仁里)사람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며, 주나라 장실(藏室, 왕실 도서관)을 지키는 사관(史官)이었다.

공자가 주(周)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禮)를 물으니,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지금 말한 예란 것은 제정한 사람의 뼈까지 이미 썪었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군자는 때를 얻으면 수레를 몰고, 때를 얻지 못하면 엉킨 쑥대처럼 행동하는 법이오.

내가 듣건대 훌륭한 장사꾼은 상품을 깊숙히 저장해 두고 가계는 텅 빈듯하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쌓고 있으면서도 외모는 어리석은 듯 한다고 하였소 당신의 교만한 기운과 많은 욕망, 그럴싸한 겉모양과 지나친 뜻을 속히 버리시오.

이런 것들은 모두가 당신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소.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오 !"

 

공자는 그곳에서 돌아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새가 날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뒤어다니는 놈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쳐 다니는 놈은 낚시로 잡고, 날아다니는 놈은 주살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에 대해서만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다닌다고 한다.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더라 !"

 

노자는 도(道)와 덕(德)을 닦아, 스스로 숨어서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쓰는 데 그 학문의 목표를 두었다.

주나라에 오랫동안 있다가 주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는 곧 그곳을 떠나 함곡관(函谷關)으로 갔다.

그 관을 지키던 윤희(尹喜)라는 사람이 노자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세상을 숨으려 하시니, 억지로라도 저를 위하여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이에 노자는 도와 덕에 관한 5천여자의 글을 써 주고 그곳을 떠났다.

그가 어디로 가서 일생을 마쳤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노래자(老萊子)도 역시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15편의 책을 지어 도를 논하였고, 공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노자는 160여세까지 살았다고도 하고, 혹은 200여세를 살았다고도 하는데, 도를 닦아 수명을 보양(保養)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가 죽은 뒤 129년 되던 해에 주(周)나라의 태사(太師, 사관의 우두머리) 담(擔)이란 사람이 진(秦)나라 헌공을 찾아 뵙고, "처음에 진(秦)나라는 주(周)나라에 합쳐져 있다가 합쳐진지 500년 뒤에는 다시 떨어지는데, 떨어진지 70년이 지나면 패왕(覇王)이 거기서 나올 겁니다."라고 마하였다고 사서(史書)에 기록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담이 곧 노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그 사실이 어떠한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노자는 숨어서 산 노자였기 때문이다.

 

노자의 아들은 이름이 종(宗)이었는데, 위(魏)나라 장수가 되어 단간(段干)이라는 마을에 봉해졌었다. 종의 아들은 주(注)이고, 주의 아들은 궁(宮)이며, 궁의 현손이 가(假)인데, 가는 한나라 문제를 섬겼다. 다시 가의 아들 해(解)는 교서왕 아의 태부가 되었기 때문에 제(齊)나라에 살게 되었다.

세상에 노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유학을 물리치고, 유자(儒者)들은 또 노자를 내치고 있다.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걸 두고 한것일까?

이이(李耳)는 무위(無爲)함으로 스스로 변화해 가고, 청정함으로써 스스로 올바른 사람이었다. ]

 

위의 사기에서 인용한 글처럼 사마천은 정확히 어떤 인물이 노자라고 규정하지 않고, 소문으로 들은 귀동냥 정보의 반신반의 방식으로 애매하게 남겨 놓고 있다.

즉 BC91년 당시에도 이미 노자는, 노담, 노래자, 태사담 등과 같은 인물 가운데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은 노자라는 인물이 춘추말기(공자보다 약간 이른 시기 혹은 동시대)에 살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자]라는 책은 한 사람의 단일한 저작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편집된 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노자 책의 형성시기도 수많은 견해들이 있어왔는데, 늦어도 춘추말기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늦어도 노자에 등장하는 개념어들의 분석을 통해 어떤 이들은 장자(莊子)보다 늦게 형성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최근 20세기말에 새로운 <노자>판본들이 발견되었다.

즉 <백서본>과 <곽점본(죽간본,초간본)>이 그것이다.

이 판본들 발견으로,

우선 <백서본>은 첫째,

현재 통행본 (왕필본) 이전의 <노자>는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의 형식이었을 수도 있으며,

둘째 현재와 같은 81장으로 분장되지 않았으며,

셋째, 현재 통행본의 몇몇 낱말은 황제나 조상의 이름을 직접 쓰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수정되었으며, 등장하는 수많은 허사(也)로 판단할 때 늦어도 전국시대 중기에 현재 통행본과 같은 내용과 분량의 <노자>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곽점본(죽간본)은 첫째, 늦어도 공자 이전 혹은 동시대에 <노자>의 원저자가 있었으며,

둘째 이 원본 <노자>는 소박하지만 통행본이 지니고 있는 도에 대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었으나 다른 학파와의 대결의식은 없었다

셋째, <백서본>과 비교해서 판단해 볼 때, 백가쟁명의 전국시대에 춘추시대의 원본 <노자>가 가필하거나 혹은 주요 용어를 바꾸어 다른 학파를 비판하는 체계로 개작된 판본이 출현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행분량의 <백서본>과 통행본의 저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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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들은 몇가지 노자도덕경 번역서에서 인용하여 여기에 발췌해논 것이다.

위의 여러가지 자료를 종합 판단하고 직접 노자도덕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직관적인 관찰 결과로써 본 역자(무한진인)가 나름대로 추측해본즉, 아래 내용과 같이 대략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위의 여러가지 자료를 보건데, 원래<노자>라는 책의 원저자는 없었고, 옛날부터 왕가나 지배자 구룹의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통치철학 중에서 태고시절부터 전해내려오는 <무위자연의 도>에 관련된 글만을 뫃아서 체계적으로 편집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노자>라는 책의 편집자를 아마도 <노자>저자로써 단정하는 것 같다.

그 <老子>라는 책의 편집자 및 관리자가 바로 <李耳> 또는 <聃>이라고 알려진 주나라 왕실도서관의 사관(史官)직책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다.

그를 <노자>라고 부르는 것은 후대에 그렇게 부른 것이고, 실제로는 그의 이름은 노자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老子>라는 책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그리고 왜 <老子>라고 책이름을 불렀을까?

<老子>를 옛말로 풀어 보면, <老>는 "오래된, 옛날" 이라는 뜻이 있고, <子>는 "선생 또는 선생의 가르침"이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老子>란 " 옛 스승의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노자>라는 말은 어떤 한 개인이나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옛부터 전해내려 오는 <옛선생의 가르침>이라는 보통 명사인 것이다.

중국대륙의 태고시대 때에는 아마도 <신>이나 <하늘>과의 신탁정치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한반도의 단군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백성들의 정신적 지도자로써 나라를 동시에 다스리는 도인의 제정일치시대가 있었을 것이며,

하늘의 마음을 <道>라고 하여 탁월한 도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태고시대에 남겨진 많은 가르침들이 전통적인 지배자 집안이나 고급관료집안에서 처음에는 "말"로 그다음에는 "노래"로 그 다음에는 글로 씌어져서 대대로 전수하면서 내려왔을 것이다.

"글자"로 씌어질 때도 처음에는 대나무나 작은 판대기에 문장별로 씌어지다가, 나중에는 헝겁이나 종이에다가 필사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전해내려온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노자도덕경의 원본이 아닌가 추측한다.

이것을 다시 한군데 뫃아서 편집하고, 또 후대에 누군가가 글을 추가하여 덧붙히기도 하고, 그 후에 각장 별로 나눈 것이 곽점본,백서본이나 왕필본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본 역자의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며, 정설은 아니다.

따라서 <노자>라는 책은 있어도, <노자>라는 사람은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위에서 <노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노자>라는 책을 편집한 편집자를 노자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렇다면 <노자>라는 책은 태고시대 때의 여러 정신적 성인의 가르침이 뫃아진 것이 전해내려온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노자>라는 책의 여러가지 철학개념과 정신수행 방법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도의 아드바이트 베단타 철학이나 우파니샤드의 내용과 흡사한 개념들이 많이 나온다.

인도의 베단타 경전과 <우파니샤드>가 중국의 <노자도덕경>과 연관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가 없다.노자도덕경은 아마도 인도의 베단타 철학과 수행체계와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는 그런 자료를 아직 찾지는 못했다.

또한 중국동부지역과 만주, 우리 한반도 일대에 지배하던 단군 고조선 시대 또는 그 이전의 태고시대 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알려진 삼성기와 천부경 역시도 노자도덕경의 도와 연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 왕필본,백서본, 곽점본에 대하여.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노자도덕경>이라는 책의 원래 이름이 [노자]다.

물론 [노자]의 저자 이름도 <노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노자]라는 책의 저자가 한 사람의 단일저작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여러사람의 글을 누군가가 <편집>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따라서 책의 형성시기에 대해서도 수 많은 견해들이 있어 왔는데,

늦어도 춘추말기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노자]에 등장하는 개념어들의 분석을 통해 [장자(莊子)]보다 늦게 형성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노자]라는 책은 [도덕경]이라고 불리우며, 여러가지 판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것은 진나라 왕필(226~249년)이 주(註)를 단 <노자도덕경>본이다.

그리고 한나라시대의 것으로 하상공(河上公)이 주를 달았다는 도덕진경(道德眞經)이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통용본인 왕필본은 크게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상편은 도경(道經), 하편은 덕경(德經)으로 부르고 있다.

총 8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한자수가 5000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고고학적 성과에 힘입어 기존의 노자도덕경과 노자라는 인물에 대해서 재평가할 계기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우선 1972년에 중국 장사성 마왕퇴에 자리한 한(漢)나라 시대 초기 묘에서 다량의 백서(帛書-비단에 씌어진 글)가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두 종류의 [노자]사본이 발굴되었다는데 기인한다.

흔히 [백서본노자]로 지칭한 이 판본들 가운데, 그 글자체로 볼 때 비교적 오래된 것은 <갑본>, 비교적 늦은 것은 <을본>이라 칭해졌다. <갑본>은 적어도 BC247년 이전 중국 전국시대 말기로 추정되며, <을본>은 늦어도 한고조가 망한 BC195년 이전 한대 초기로 추정되었다.

 

백서본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발표되고 있다.

가) <갑을본> 모두 도편(道篇), 덕편(德篇)으로 나눠놓았지만 그 순서에서 기존 통행본과 달리 <덕편>(38장~81장)이 도편(1~36장)보다 앞에 편집되어 있다.

나) 통행본은 81장으로 분장되어 있으나, 백서본은 연속적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갑본의 경우 일부에서 분장을 나타내는 점표시가 있다.

다) 일부 장은 현재 통행본(왕필본)과 순서를 달리하는데, 통행본의 22~24장이 백서본에서는 24-22-23장의 순서로, 40~42장에서는 41-40-42의 순서로 편집되어 있다.

라) 야(也),의(矣) 같은 허사가 현행  통행본보다 많이 등장한다.

이와같이 통행본과는 다른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학자들은 기존 통행본인 왕필본보다는 백서본이 훨씬 노자원본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20년 뒤인 1993년에 중국 호북성 형문시 곽점촌의 초(楚)나라 고분에서 800여매의 죽간(竹簡-대나무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71매는 [노자]와 관련(총2046자로,통행본의 5분의2에 해당하는 분량)이 있는 것이었다.

[곽점초묘죽간본노자](이하 죽간본)로 지칭할 수 있을 이 판본은 늦어도 BC4세기 전국시대 중기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곽점본은 현행왕필본과 비교하면, 죽간의 길이에 따라서 갑,을,병조로 나누어졌는데, 아래와 같다.

[갑] 19장, 66장, 46장 중하단, 30장상중단,15장,63장 하단,37장,63장,2장,32장,25장,5장 중단,16장 상단,64장 상단, 56장,57장, 55장, 44장, 40장, 9장,

[을] 59장, 48장 상단, 20장 상단, 13장, 41장, 52장 중단, 45장,54장.

[병] 17장, 18장, 35장, 31장 중하단, 64장 하단

 

대략 관련 학자들이 본 [곽점본]이 지니는 특성을 몇가지 들어 보면,

가) 곽점본에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용어가 없으며,

나) 정치적이거나 권모술수적인 용어가 없으며,

다) 반유가(反儒家)적인 태도가 없다.

그러므로 곽점 죽간본은 원래 태고시대의 노자원본에 가깝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따라서  [백서본]과 [곽점본]의 발굴에 의하여 기존에 주장하던 노자라는 인물과 통행본 노자에 대하여 재검토해야 할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기존에 주장하던 노자라는 인물은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BC91년에 완성한 사마천의 <사기>에서 나오는 <노자열전>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노자를 노담,노래자,대사담, 등과 같이 분명하게 구별해서 말하지 못하고, 소문에 들은 내용처럼 "그럴지도 모른다"식으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의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적어도 공자(BC551~479년)보다 약간 이른시기라고 추정하기도 하고, 혹은 전국시대(BC403~221)말기라고도 하고, 혹은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노자 책의 형성에 대해서도 저자가 한사람이 아니라고 하기도 하고, 편집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책의 편집시기에 대해서도 정론이 없다.

 

이렇게 노자 및 [노자]책에 대하여 다양한 주장이 있게 된 것은 현행 통행본 가운데 많이 이용되는 <왕필본 노자>가 12세기 [장지상본(張之上本)]을 저본으로 간행된 16세기 판본이라는데 기인한다.

나아가 현행 세칭 [왕필본]이 왕필(225~249)이 보았던 원문과 그 주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백서본과는 최소 450년, [곽점죽간본]과는 6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바로 이때문에 노자도덕경 연구자들이 [백서본][곽점본] 발굴에 흥분하여 이 두판본이 노자와 노자도덕경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해 주고, 잘못된 점을 교정해 줄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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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 역자(무한진인)가 대략적으로 검토해 보기로는 현행 왕필본이라는 노자도덕경 원문과 왕필이가 주석한 노자도덕경 주석내용과 비교해 본 결과 주석내용이 다른 부분을 다수 발견했다.

현행 왕필본의 원문과 왕필본주석내용이 다른 곳이 다소 있다는 것은 현재 통용본인 왕필본이 왕필이가 본 도덕경 원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것이며, 오히려 왕필의 주석내용은 백서갑을본 원문과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현재 대부분의 노자도덕경 번역서들이 통용본이라는 왕필본으로 해석을 했는데, 실질적으로 서기240년 정도에 왕필이가 주석한 도덕경 원문은 현재의 통용본이 아니라는 것을 관련 전문학자들이 정밀하게 조사하고 연구검토하여 그 동안 잘못 알려진 정보를 공론화 하여 사회와 관련학계에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

16세기에 만들어진 현재의 소위 왕필본이라고 하는 통용본을 편집한 사람들이 3세기경에 왕필이라는 역사적인 대학자의 권위를 이용해서 <왕필본>이라고 이름만 지었을 뿐, 실은 왕필이가 주석한 원본과는 다른 내용이므로 이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는 것은 제도권에 있는 학자들 외에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주장해 보았자,어느 동네개가 짓는 것 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재 왕필본이라고 부르고 있는 통용본은 <진짜 왕필본>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몇가지 정보에 의한 판단으로 본 역서에서는 노자도덕경 중에서 곽점본이 가장 노자의 원작에 근접해 있다고 판단되어 [곽점본]을 가장 중요시 여겼으며, 그 다음으로는 [백서갑본], 그 다음의 통행본인 [왕필본]을 참고적으로 활용했다.

따라서 현행 왕필본은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16세기) 개작된 문장들이 많기 때문에 태고시대에 전수된 순수한 무위자연의 도에서 벗어난 문장들이 많이 있다고 판단되며, 이렇게 곽점본 또는 백서본 원문과 다르게 개조한 문장들은 본 역자(무한진인)가 그 글자 또는 문장들을 재검토하여, 백서본 또는 곽점본에 있는 관련 문장들과 세밀하게 비교분석해 보고, 원래 노자가 가르쳐 주고자 하는 주제의 핵심을 추출하여 그에 적절한 현대적 어휘를 선택해서 본역자 나름대로 해석과 주석을 한 것이므로 다른 노자도덕경 해석과는 많은 부분에서 내용이 다르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