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3. 21:13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완릉록]
18. 황벽선사의 유행(遊行)과 기연(機緣)
황벽대사는 본시 미현(閩縣) 땅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본주(本州) 땅 황벽산으로 출가하셨다.
스님의 이마 사이에 솟아오른 점은 구슬과 같았고, 음성과 말씨는 낭낭하고 부드러웠으며, 뜻은 깊고도 담박하셨다.
뒷날 천태산(天台山)에 노니시다가 한 스님을 만났는데,
처음인데도 오래 사귄 사람과 같았다.
이윽고 길을 가다가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난 곳에 이르렀다.
그때 대사께서는 석장을 짚고 멈추시더니,
그 스님이 대사를 모시고 건너려고 하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형씨나 먼저 건느시오."
그러자 그 스님이 곧 삿갖을 물위에 띄우고 곧장 건너가 버렸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 어쩌다 저런 나한 쫄짱부하고 짝을 했을까? 한 몽둥이로 때려 죽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어떤 스님이 귀종(歸宗)을 하직하는데 귀종이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제방에 다섯 맛의 선(五味禪)을 배우러 갑니다."
"제방은 다섯 맛의 선이지만 나의 이곳은 오직 한 맛의 선이라네."
"어떤 것이 한맛의 선입니까?"
그러자 귀종이 문득 후려쳤다.
그 스님이 소리쳤다.
"알았읍니다. 알았읍니다."
귀종이 다그쳤다.
"말해 봐라, 말해 봐라."
그 스님이 입을 열려고 하자 귀종은 또 몽둥이로 내리쳤다.
그 스님이 뒤에 대사의 회하에 이르자 대사께서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는가?"
"귀종에서 옵니다"
"귀종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 스님이 앞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드리니,
대사께서는 곧 바로 법좌에 올라가 그 인연을 들어서 말씀하셨다.
"마조스님께서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긴 했으나, 질문을 당하면 모두가 똥이나 삘삘싸는 형편들인데, 그래도 귀종이 조금 나은 편이다."
대사께서 염관(鹽官?~842)의 회하에 있을 때에 대중(大中) 황제는 사미승으로 있었다.
대사께서 법당에 예불을 드리는데 그 사미승이 말하였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는 것이어늘, 장로께서는 예배하시어 무엇을 구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면서, 늘 이같이 예배하느니라."
"에배는 해서 무얼하시렵니까?"
그러자 대사께서 갑자기 사미승의 뺨을 올려치니
그 사마승은 "몹씨 거친 사람이군"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무슨 도리가 있길래 네가 감히 거칠다느니 섬세하다느니 뇌까리느냐!"하고 뒤따라 또 뺨을 올려 붙이니, 사미는 도망가 버렸다.
대사께서 제방에 행각하실 적에 남전(南泉 734~843)에 이르렀다.
하루는 점심공양을 할 때 발우를 들고 남전의 자리에 가서 앉으셨다.
남전이 내려와 보고는 대사께 물었다.
"장로께서는 어느 시절에 도를 행하였오?"
"위음왕 부처님 이전부터 입니다."
"그렇다면 내 손자뻘이 되는구먼."
그러자 대사는 곧바로 내려와 버렸다.
또 어느날 대사께서 외출하려고 할 때에 남전이 말하였다.
"이만큼 커다란 몸집에 조금 큰 삿갓을 쓰셨군!"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이 속에 들어 있읍니다."
"이 남전의 대답이로다."
그러자 대사는 삿갓을 쓰고 곧 가버렸다.
또 하루는 대사가 차당(茶堂)에 앉아 있는데 남전이 내려와 물었다.
"정과 혜를 함께 배워서 부처님의 성품을 밝게 본다 하는데, 이 뜻이 무엇이오?"
"하루종일 한 물건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장로 견해인가요?"
"부끄럽습니다."
"장물(醬水) 값은 그만두어도 짚신 값은 어디서 받으란 말이오?"
그러자 대사는 문득 쉬어 버렸다.
뒷날 위산(771~853)이 이 대화를 가지고 앙산(803~887)에게 물었다.
"황벽이 남전을 당해내지 못한게 아닌가?"
"그렇지 않읍니다. 황벽에게는 범을 사로잡는 기틀이 있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대의 보는 바가 그만큼 장하구나 !"
하루는 대중이 운력을 하는데 남전이 대사께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채소 다듬으러 갑니다"
"무엇으로 다듬는가?"
대사가 칼을 일으켜 세우자 남전이 말하였다.
"그저 손님 노릇만 할 줄 알지 주인 노릇은 할 줄 모르는 군."
그러자 대사는 세번을 내리 두드렸다.
하루는 새로 온 스님 다섯명이 동시에 서로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 스님만은 예배를 올리지 않고 그저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면서 서 있었다.
이것을 본 대사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한 마리의 훌륭한 사냥개라고 말할 줄 아느냐?"
"영양(羚羊,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을 비유-무아)의 기운을 찾아 왔읍니다."
"영양이란 기운(機運)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영양의 발자국을 찾아 왔읍니다."
"영양은 발자욱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죽은 영양입니다"
이말을 듣자 대사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튿날 법좌에 올라 설법을 끝내고 물러나면서 물었다.
"어제 영양을 찾던 스님은 앞으로 나오너라."
그 스님이 바로 나오자 대사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어제 너와 대화를 하다가 끝에 가서 다 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어떤가?"
그 스님이 말이 없자 대사께서 말을 이었다.
"본분납승(本分衲僧)인가 했더니, 그저 뜻이나 따지는 사문이로구나."
대사께서는 일찌기 대중을 흩으시고, 홍주 땅의 개원사에 머물고 계셨다.
이 때에 상공 배휴거사가 어느 날 절로 들어 오다가 벽화를 보고 그 절 주지 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진짜 고승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 절 주지스님이 아무런 대담을 못하자 배휴가 "이곳에 선승은 없읍니까?" 하고 물으니,
"한분이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상공은 마침내 대사를 청하여 뵙고,
조금전에 주지스님에게 물었던 일을 스님께 다시 여쭈었다.
그러자 갑자기 대사가 불렀다.
"배휴 !"
"예 !"
"어디에 있는가?"
상공은 이 말 끝에 깨치고 대사를 다시 청하여 개당 설법을 하시게 하였다.
-황벽선사의 완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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