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부처

2010. 8. 4. 20:09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완릉록]

 

17. 마음이 부처.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꿈틀거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불성이어서, 동일한 마음의 본체를 지녔느니라.

 

그러므로 달마스님이 인도로 부터 오셔서 오직 한 마음의 법만을 전하셨으니,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곧 바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깨달음이란 수행을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요,

결코 달리 구하지 말라.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지금 말하는 것이 바로 너의 마음이니라.

만약 말하지 않고 작용하지도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모양도 없고, 또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그렇다고 그저 한결같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있으면서도 볼수가 없기 때문에 조사스님께서는,

'참된 성품의 마음자리(眞性心地藏)는 머리도 꼬리도 없는지라,

인연에 호응하여 중생을 교화하나니, 방편으로 그것을 지혜라 부른다.' 하셨다.

만약 인연에 호응하지 않을 때라도  있고 없음을 말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바로 호응할 때도 종적이 없느니라.

 

이미 이런 줄 알았을 진댄 '없음' 가운데 쉬어 깃든다면,

곧 모든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것이니라.

경에서 이르기를 '마땅히 머문바가 없이 그 마음이 난다'고 하셨으니,

모든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은

뜻으로 반연하고 분주히 조작하는 마음이 6도에서 멈추지 못하여,

마침내는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유마거사가 이르기를,

'교화하기 힘든 사람은 원숭이처럼 의심이 많기 때문에 여러가지 법으로 제어한 다음에 비로소 조복시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일체법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천상,지옥,6도.아수라가 모두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심하기만 하면 모든 반연은 단박에 쉬게 되며

망상분별을 내지 않으면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욕심과 성냄도 없고,

밉고 고움도 없으며, 이김도 짐도 없느니라.

 

허다한 여러가지 망상을 없애버리기만 하면

자성(自性)은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니,

곧 깨달음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과 나란히 되는 것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설사 널리 배우고 ,부지런히 수행하며,

나무먹이를 먹고 풀옷을 입는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한 것이니라.

그런 것들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고 하며

모두 다 천마, 외도, 물과 뭍의 여러 귀신노름을 하는 것이니,

이같이 수행한들 무슨 이로움이 있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본래 몸은 자기의 마음이 짓는 것이어늘, 어찌 문자 속에서 구하리오?' 하였다.

지금 자기 마음을 알아서 사량분별하는 망상을 쉬기만 하면 6진의 번뇌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오직 침상 하나만 두고 병들어 누워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니라.

지금 알아 누워서 반연을 모두 쉬어 망상이 그쳐지면, 그것이 바로 보리니라.

 

지금 만약 마음 속이 분분히 시끄러워 안정되지 않았다면,

너의 배움이 비록 3승, 4과, 10지의 모든 지위에 이르렀다 해도

아직,범,성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함이 옳다.

 

모든 행위는 끝내 덧없음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힘이 다할 때가 있기 마련이니,

마치 화살을 공중에 쏘면 얼마 안가 힘이 다해 땅에 도로 떨어지는 것처럼,

생사의 윤회에 다시 돌아가고 만다.

이와같은 수행은 부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요,

헛되이 쓰라린 고초를 받을 뿐이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세간에 뛰어난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대승의 법약을 잘못 먹은 것이다'고 하였다.

단지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눞는 모든 시간 가운데서 오로지 무심함을 배우기만 하면,분별도 없고 의지 할 것도 없으며, 또한 머물러 집착할 바도 없다.

종일토록 둥둥 떠오르는 기운대로 내맡겨 둔것이, 마치 바보와도 같은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너를 모른다 하여도,

일부러 알리거나 모르게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마치 큰 바위덩이와 같아서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고,

일체 법이 너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여 올연히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

이와 같아야만 비로소 조금은 상응할 분(分)이 있다 하리라.

 

3계의 경계를 툭 뚫고 지나기만 하면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셨다고 하는 것이며,

번뇌없는 마음의 모습을 바로 샘이 없는 지혜(無漏智)라고 부른다.

인간과 천상업을 짓지 않으며,

그렇다고 지옥업을 짓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반연이 전혀 생기지 않으면

곧 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결같이 나지 않음(不生)만은 아니어서,

뜻 따라 날(生) 따름이다.

경에 이르시기를 ' 보살은 자기 뜻대로 나는 몸을 가졌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마음이 없음을 모르고 모양에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는 것은 모두 마구니의 업에 속하는 것이다.

나아가 정토의 수행을 한다 하더라도 모두 업을 짓는 것으로써,

이것을 부처의 장애라고 하느니라.

그것이 그대의 마음을 가로막기 때문에 인과에 얽매여,

가고 머무름에 조금도 자유로움이 없다.

왜냐하면 보리등의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치 누런 잎사귀를 돈이라 하여 우는 아이의 울음을 억지로 그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로 법이 있지 않음을 무상정각이라고 하나니,

지금 이뜻을 알았다면 어찌 구구한 설명이 더 필요하겠느냐?

다만 인연따라 묵묵히 업을 녹일 뿐이요,

다시 새로운 재앙을 짓지 말라.

 

마음 속은 밝고 또 밝기 때문에 옛시절의 견해를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서 유마경에서는 이르기를, '가진 것을 잊어 버린다'고 하였으며,

법화경에서는 '20년동안 항상 똥을 치게 하셨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마음 속에 지은 바 견해를 없애게 하는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희론(戱論)의 똥을 쳐서 없앤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본래 스스로 공적(空寂)하여 결코 한법에라도 멈춰 머무르지 않으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의 나라도 다 비었다'고 하셨느니라.

 

만약 부처님의 도를 닦아 배워서 얻는다고 한다면,

이와같은 견해는 전혀 맞지가 않는 것이다.

혹은 한 기연이나 한 경계를 보이기도 하며,

눈썹을 치켜 뜨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여 어쩌다 서로 통하기라도 하면,

곧 말하기를, '계합하여 알았다'고 하며,

혹은 '선의 이치를 깨쳐서 증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도무지 아는게 없다가, 그 사람을 대하여 무슨 도리라도 얻게 되면 마음 속에 문득 환희하여 기뻐한다.

그러나 만약 상대에게 절복당하여 상대보다 못하게 되면 속으로 섭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처럼 마음과 뜻으로 배운 선(禪)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비록 그대가 자그마한 도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한낱 마음으로 헤아리는 법일 뿐이요,

우리 종문의 선도(禪道)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달마스님께서 면벽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전혀 견처(見處)가 없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마음의 작용을 잊는 것은 부처님의 도이나, 분별망상은 마구니의 경계다'고 하였다.

 

이 성품은 네가 미혹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그렇다고 깨쳤을 때에도 역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라.

천진스러운 자성은 본래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으며,

온 시방의 허공계가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니라.

그러니 네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허공이란 본래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라 할 것도, 인위적인 작위도 없으며,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다.

그래서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고 하였으며,

털끝만큼이라도 사량분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니,

의지하여 기댈만한 것도 없으며, 달라 붙을 것도 없다.

 

한줄기 맑은 흐름이 자성의 남이 없는 진리(無生法忍)이니,

어찌 머뭇거려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겠느냐 !

참 부처는 입이 없기 때문에 설법할 줄 모르고,

진정으로 들음은 귀가 없으니,

뉘라서 들을 수 있겠느냐 !

수고하였다, 편히들 쉬거라."

 

                                                         -황벽선사의 완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