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1. 20:50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완릉록]
1. 도는 마음을 깨치는데 있다.
배상공이 황벽스님께 여쭈었다.
산중(山中)의 사오백명 대중 가운데서 몇명이나 스님의 법을 얻었읍니까?"
대사가 말씀하셨다.
"법을 얻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도는 마음을 깨치는 데 있는 것이지,어찌 언설에 있겠느냐? 언설이란 다만 어린아이를 교화할 뿐이니라"
2. 자기의 마음을 알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요 무심(無心)이 道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움직인다든지,
혹은 있고(有) 없음(無), 길고 짧음, 너와 나,
나아가 주체니 객체니하는 마음이 없기만 하면,
마음이 본래 부처요, 부처가 본래 마음이니라.
마음이 허공과 같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니 부처를 따로 구하려 하지 말것이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라.
설사 오랜세월 6도(六度)만행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구경(究竟)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연의 조작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연이 다하면 덧없음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보신과 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요
또한 법을 설하는 자도 아니다.'고 하였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나(我)라고 할 것도 없고 또한 남(人)도 없어서
본래 그대로 부처이니라"
3.기틀을 쉬고 견해를 잊음.
"성인의 무심은 곧 부처의 경지이지만 범부의 무심은 공적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까?"
"법에는 범,성의 구별이 없으며 또한 공적한 상태에 빠지는 것도 없다.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없다는 견해도 내지 말라.
또한 법은 본래 없지 않으나, 있다는 견해도 내지 말라.
법이 있느니,없느니 하는 것은 모두 뜻(情)으로 헤아리는 견해로서,
마치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보고 듣는 것은 마치 허깨비 같고, 생각하며 헤아리고 느끼는 것이 바로 중생이니라'고 하였다.
조사문중에 있어서는 오로지 마음을 쉬고 알음알이를 잊는 것을 논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어 버리면 부처님의 道가 융성해지고,
분별하면 마구니의 장난이 치성해지느니라"
4. 마음과 성품이 다르지 않다.
"마음이 본래 부처인데 6도만행은 다시 닦아야 합니까?"
"깨달음은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6도 만행(심신수행)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6도 만행은 그저 교화의 방편으로서 중생을 제도하는 쪽의 일일 뿐이다.
설사 보리,진여와 실제의 해탈법신과 나아가 10지 4과 등의 성인의 지위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모두가 교화 제도하는 방편의 문일 뿐이어서, 부처님의 마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느니라.
마음이 곧 그대로 부처이니,
교화제도하는 모든 방편문 가운데서 부처님의 마음이 으뜸이니라.
다만 생사,번뇌 따위의 마음만 없으면 보리 등의 법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나의 모든 마음을 제도하시기 위함이로다.
나에게 일체의 마음이 없거니, 어찌 일체법을 쓰리오'라고 하였다.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다른 것은 말하지 않으셨고,
오직 한 마음만을 말했을 뿐이며, 또한 일불승(一佛乘)만을 말하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시방을 두루 살펴 보아도 다시 다른 승(乘)이 없나니,
지금 여기에 남아 잇는 대중들은 곁가지와 잎은 없고 오로지 모두 잘 익은 열매들 뿐이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뜻은 쉽게 믿기가 어렵다.
달마스님이 이땅에 오셔서 양(梁),위(魏) 두 나라에 머물렀는데,
오직 혜가(慧可, 487~593)스님 한분만이
자기의 마음을 가만히 믿고 말끝에 문득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없음을 이름하여 큰 道라 하느니라.
큰도는 본래로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이 하나의 참 성품으로 같다는 것을 깊히 믿어야 한다.
마음과 성품이 본래 다르지 않으므로
성품이 곧 마음이니라.
마음이 성품과 다르지 않은 사람을 일컬어 조사(祖師)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의 성품을 알았을 때 비로소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 있도다'고 하였다"
-황벽선사의 완릉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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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황벽선사의 법문인 완릉록을 계속 실어 보겠읍니다.
완릉록은 앞의 전심법요와 함께 배휴거사와 황벽선사의 대담록으로 기록된 법문이지만,
전심법요는 배휴거사가 직접 기록한 내용으로 저술되었고,
완릉록은 당초는 배휴거사가 기록한 내용을 후세의 제자들이 다시 재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전심법문은 배휴거사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완릉록에는 시종일관 "배상공이 운운---"하면서 제3인칭으로 기술한 것을 보면 알수 있읍니다.
이 완릉록은 배휴가 완릉군의 군수관직에 있을 때에 그 관내에 있던 개원사에서 황벽스님에게 직접 사사받은 기록을 후에 황벽스님의 시자들이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앞서 게재한 <전심법요>와 중복되는 내용이 다소 있읍니다만,
선종 초기의 <一乘法>에 대한 기본 원리를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훌륭한 법문입니다.
전심법요와 함께 완릉록도 조선시대 선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선불교 교재로 취급하였으며,
조선 말 한국 선불교를 부흥한 경허선사가 편집한 선문촬요에도 수록되어 있읍니다.
황벽선사가 배휴거사에게 심오한 일승불법을 아주 자상하게 가르쳐 주신 내용이며
조금만 주의 깊고 읽어가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겁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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