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8. 20:45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구도자들이여,
눈 앞에 작용하는 이놈이 바로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은데,
그대들은 믿지 않고 밖에서 찾는다.
착각하지 말라, 밖에도 법은 없으며, 안에서도 찾을 수는 없다.
그대들은 내말을 듣느니 아무 일없이 쉬는 편이 낫다.
이미 일어난 일(수행)은 계속하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그것이 10년 행각을 해온 것보다 낫다.
내가 보기엔 그런 많은 일(수행)들은 허망한 것이며,
다만 평상시에 옷 입고 밥 먹으며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
제방에서 온 그대들은 모두가 마음이 있어서,
부처가 되려하고 법을 깨닫고자 하며 해탈하여 3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어리석은 이들이여,
3계를 벗어나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부처나 조사란 그들을 존경하여 붙힌 이름일 뿐이다.
3계를 알고자 하느냐?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그대들 마음자리를 떠나 있지 않으니,
그대들의 한생각 탐내는 마음이 욕계이고,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색계이며,
한 생각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로서
모두가 그대들 잡안에 있는 살림살이들인 것이다.
3계는 스스로 내가 3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소소영령하게 만물을 비추고 세계를 가늠하는 그 사람이 곧 3계에다 이름을 붙히는 것이다.
대덕들이여,
4대로 된 몸뚱이는 덧없는 것이다.
나아가 지라,위,간,쓸개와 머리카락, 털, 손톱,이빨 등도 오로지 모든 법이 빈 모양임을 보여줄 뿐이다.
한 생각 마음이 쉴 때를 보리수(菩提樹)라 하고,
한 생각 마음이 쉬지 못하는 때를 무명수(無明樹)라 한다.
무명이란 머물곳이 없으며, 처음도 끝도 없다.
그러므로 생각 생각 마음이 쉬지 못한다면 저 무명의 나무 위에 올라가 4생6도에 들어가서 털 가죽쓰고 뿔 달린 짐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쉬기만 하면 그대로가 청정법신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한 생각이 나지 않으면 보리수에 올라가 신통변화하여 3계에 뜻대로 몸을 나투고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보며, 몸에서는 저절로 빛이 날 것이다.
옷을 생각하면 비단 옷이 천겹으로 걸쳐지고,
밥을 생각하면 백가지 진수성찬이 그득히 차려지며,
다시는 횡액병사(橫厄病死) 같은 일이 없으니,
보리는 머물 곳이 없으므로 얻을 것도 없다.
구도자들이여,
대장부가 더 무엇을 의심하느냐?
또한 눈 앞에서 작용하는 것은 누구냐?
잡히는 대로 쓰면 될 뿐 이름은 붙히지 말것이니.
그것을 깊은 뜻(玄旨)이라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꺼려할 법이란 없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마음은 만 가지 경계따라 변화하지만(心隨萬境轉)
변하는 경계마다 실재가 그윽하게 숨어 있느니.(轉處實能幽)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성품을 깨달을 수 있으면(隨流認得性)
기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느니라.(無喜亦無憂)
-임제록 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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