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는 단순히 "있음"이지만, 알려지는 대상이 아니다.(1)

2010. 1. 26. 19:06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이 세상은 삼계 또는 삼세(三世)라고 하는, 세개의 세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생시상태, 꿈 상태, 깊은 잠의 세가지 상태인 것이다.

깊은 잠의 상태를 파탈(paataal)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태를 주시하는) 나라야나(narayana,주시자)는 만물 속에 내재해 있다.

 

맨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꿈 상태가 나타났다.

이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가?

꿈 속에 있는 사람과 그 꿈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이다.

 

한 존재 안으로 들어 온 꿈은 곧 사라지며,

또한 깊은 잠도 잠시 왔다가 가버린다.

그러나 꿈을 꾸고,  잠을 자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항상 있다.

그는 세가지 세상(三世)의 지배자이다.

그는 모든 것을 주시한다.

그가 절대자(paramatman)이며, 우리들의 참나이다.

 

우리들의 마음과 知性과 生氣(푸라나)가 활성화 하도록 에너지를 주고,

감각기관을 작용시키는 것은

바로 이 주시자 神(나라야나)인 것이다.

만일 그대가 神은 감각기관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 안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의 왕이다.

그는 감각기관에 의존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그 이전에 있는  神이다.

 

만일 그대가 그 神을 억지로 알려고 애를 쓴다면,

그대는 스스로 속아 넘어갈 것이다.

그 신(주시자)은 어떤 것에 의해서는 알려질 수가 없다.

만일 그대 자신이 어떤 특별한 정체성의 존재라고 상상하면서,

그(주시자,신)를 알려고 애를 쓴다 해도,

그런 지성을 통해서는 의식 안에서 전혀 알려 질 수가 없다.

 

그를 억지로 알려고 애쓰지 말라.

그가 "아는 자"이다.

신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는 항상 존재한다.

이것이 일체가 현재진행형의 현존상태로 있다는 이유이다.

그 하나(신)는 지금까지 계속 있어왔다.

다만 지금 그것을 다시 한번 내세워 보는 것이다.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지성인(명상자)은 "아는 자" 또는 "주시자"가 될 수가 없는데, 신을 (대상으로써)알려고 또는 보려고 애를 쓴다.

앎이란 앎 그자체에 의해서 저절로 알려지는 것이다.

이것은 말없이 이해되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저절로 그렇게 알려지는 것이다.

 

신을 알려고 하는 행위는

마치 한사람의 진아가 거울 속의 자기 진아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실재(實在)가 앎(의식)의 거울 속에서 (허상으로)보여진다.

혀의 기능은 맛에 작용해서 맛을 보는 것이다.

앎이라는 의식은 거울과 같다.

 

의식은 단순히 하나일 뿐이다.

어떻게 하나 밖에 없는 의식이 어떤 또 "다른 것"을 알수가 있겠는가?

우리들은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를 통해서 그원리를 배워가지고 명확히 이해해야만 한다.

모든 존재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 하나는 우리들의 마음 중심(심장) 속에 있으며, 그것이 절대존재인 파라마트만인 것이다.

 

어떤 상태로써도 상상할 수 없는 것, 

그냥 "있다"는 그것이 바로 부라만인 것이다.

어떤 특별한 상태를 상상한다는 것은 "두번째" 또는 "다른 것"을 더 덧붙히는 짓이다. (원래부터 있는 하나 이외에 다른 개념을 덧씌우는 것이다)

 

연못 속의 물이 하늘을 향해서 분출하여 솟아 올라가면 그것이 하늘을 보지만,

그 솟아오른 물줄기가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연못속의 전체 물과 하나가 된다.

위로 솟아 오른 물이 자신은 오직 연못 속에 있던 물이라는 것을 이해 할 때에만 거기에 진리가 드러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옳바르게 깨달은 스승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이것을 이해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꼼짝않고 앉아있으면서도 마음은 이리저리 헤메고 다닌다.

만일 그대가 진아를 알려고 애를 쓴다면,

그대는 그대가 지니고 있던 지성적 재능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그대는 대상화된 감각적인 의식작용을 통해서는 실재(實在)를 만날 수가 없다.

그것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집착이 있는 한에는

오로지 의식 안에서 혼돈의 움직임만 일으킬 뿐이다.

 

이렇게 경험과 지성으로 알려고 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경험의 차원에서 실재를 얻을려고 노력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을 모두 다 벗어나라.

두 경우 모두 개념일 뿐이고, 그대의 마음 자세일 뿐이다.

앎과 모름을 벗어날 때에 오로지 남아있는 것은 아주 단순한 "존재"인데,

그것은 순수한 "있음"의 상태인 것이다.

그 "있음"의 상태에서 불현듯 깨달음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진아인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알려 질 수 있는가?

그대가 매일 여기에 오고 있고,

그대는 나에게 그대의 진아를 어떻게 스스로 붙들 수 있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는데,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나는 그대가 그 진아상태에서 잃어버리지 않았음을 잘 알고있다.

나는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으므로 그대의 요청을 들어 줄 것이다.

 

진아의 본성은 "있는 것"이다.

그대가 神이라는 것을 원치 않을지라도, 그러나 神은 있다.

만일 그대가 그런 神을 알려고 원하지 않을지라도, 그는 확실하게 있을 것이다

그가 절대진아인 파라마트만이다.(다음회 계속)

 

                                                                          -S .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