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7. 19:00ㆍ성인들 가르침/쌍카라차리아
"이 차별상 없는 지고의 비이원적인 진아 안에서,
지성의 착각에 의해 나타나는 '너, 나, 이것' 따위의 모든 상상적인 부가물들은
삼매나 브라만의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진아는,
이러한 대상적인 부가물들과의 차별화 (개아들의 육체모양이 다양해 보이는 것)로 인해 별도로 분활 가능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 개별적 경계들이 제거되면 그것은 단일한 것으로 빛난다.
절대자 안에 있는 이러한 개별적 경계들을 없애려면,
끊임없는 삼매상태 속에 안주(安住)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모든 활동을 그만두고 말벌에 대하여 끊임없이 명상하는 말벌 유충이 말벌이 되듯이,
이러한 진아에 대한 일념(一念) 집중 속에서,
고요하고 안정되게 머무르는 명상을 끊어짐 없이 행하므로써,
브라만 안에서 확고하게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 영혼의 소유자는
절대적인 고요함 속에서 저 지고아(至高我)의 성품과 동일하게 된다.
이와같이 끊어짐 없이 집중하는 부라만 명상수행의 결과로,
마치 금광석을 제련로에 넣고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해 버리면,
본래의 순수한 황금을 얻는 것처럼,
사뜨와,라자스,따마스라는 세 가지 구나(의식의 파동성)의 오염이 제거되고,
청정하고 순수한 본래 자성(自性)이 드러나게 되며,
마음은 지극히 미세해져서 항상 부라만 속에 완전히 녹게 된다.
마치 소금 알갱이들이 물 속에서 완전히 녹아 전체가 된 것 처럼-,
이리하여 비이원적이며 본질적인 지복의 체험을 주는 무상삼매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삼매를 통해서 모든 원습의 매듭과 모든 업의 씨앗들이 소멸되어,
아무 애씀도 없이, 안팎으로, 언제 어디서나,
참된 성품의 광명을 저절로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삼매에 의해서,
지극히 예민한 지성을 가지고,
지극히 미묘한 마음 안에서
지극히 미세한 부라만을 체험할 수가 있지만,
그 이외의 다른 어떤 방편이나 또는 어떤 특별한 개념이나 지성을 가지고는 그것을 체험할 수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평안, 절제, 물러남 또는 초연, 인내 등을 확고하게 세운 구도자는
지속적인 삼매 안주의 성취를 통해서
자신 안에서 전체에 두루한 진아라는 체험을 얻으며,
무지의 어둠으로 야기된 모든 차별상들을 제거하고,
아무런 분별도 없이 전체가 하나가 된 상태의 부라만 안에서
언제나 행복하게 머무르게 된다.
이와같이 70가지 외부의 대상과,
귀를 위시한 감각기관들, 마음 등이 진지(眞知) 안에서 완전히 해소되는 그러한 무상삼매를 성취한 사람 만이 윤회의 속박에서 해방되며,
이론적인 지성(알음알이)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기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무상삼매를 통해서만 부라만의 참된 성품을 아무런 장애없이 분명히 알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떠나서는 마음의 상(想)들이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옮아 다니며 항상 변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관과 마음을 제어하고
항상 그대의 진아 안에 확고히 안주하여,
저 하나인 진아의 직관적 체험을 통해서,
무지와 그것을 야기하는 에고를 완전히 소멸하고,
항상 진아로써 안주해야 한다.
성찰(省察)은 청문(聽聞)보다 100배나 강력하고,
일여내관(一如內觀)은 청문보다 십만배나 더 강력하다.
그렇다면 무상삼매를 통해 얻는 힘에 어떤 한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무한하다)
이 삼매요가에서는 말의 절제(침묵), 무소유, 무욕, 물러남, 항상 홀로 있음,
등이 모두 그 초기 단계의 보조적인 방편들이다.
홀로 있음으로써 감관이 가라앉고,
그럼으로써 마음의 움직임이 가라 앉으며,
이 마음이 제어 됨으로써 '나"라는 에고를 위시한 원습들이 소멸되고,
영속적이고, 항상 움직임 없는 부라만의 지복에 대한 본질적 체험을 얻게 되므로,
수행자는 항상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호흡은 마음 안으로 가라 앉아야 하고,
마음은 지성 안으로,
지성은 주시자 안으로 가라 앉아야 하며,
그 주시자는 일체에 두루한 차별상 없는 부라만을 알게 되므로써,
지고의 평안을 얻게 된다.
의식은 육체, 생명기운, 마음, 혹은 지성등의 어떤 덧씌워진 부가물과 결합을 하여 동일시 작용을 하게 되는데,
명상을 하는 사람도 그 의식에 이끌려서 덧씌어진 부가물들과 동일화하여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의식은 행위의 그침(뒤로 물러남, 초연)을 통해서 그런 동일시되는 대상들을 배제시키고, 영원한 지복인 부라만 안에 가라 앉아서 평안을 얻어야 한다. "
-쌍카라차리아의 비베카츄다마니(분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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