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허공

2009. 9. 24. 19:57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거울 안에는 허공이 있고 거울은 상을 반사합니다. 이 상들은 어떻게 해서 거울 안에 있읍니까?

 

마하리지 : 대상들은 공간 안에 머무르는데, 대상과 공간은 함께 거울 안에서 반사됩니다.

사물들은 공간 안에서 보이듯이, 거울 안에서도 보입니다.

거울 판 자체는 얇읍니다.

그 대상들이 어떻게 그 작은 범위 안에 들어 갈 수 있읍니까?

 

방문자 : 항아리 안의 허공은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해 줍니까?

 

마하리지 : 항아리의 허공 안에서는 아무것도 반사되는 것이 없읍니다.

반사는 그 안에 담긴 물에서만 일어납니다.

몇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워 저수지 안에 두면, 허공은 항아리들  안에 든 물과 저수지의 물에서 똑 같이 반사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 우주도 각 개인 안에서 반사되는 것입니다.

 

방문자 : 항아리들의 주둥이기 저수지의 수면보다 위에 있어야 합니다.

 

마하리지 : 그래야겠지요. 그렇지 않고 만일 저수지에 잠겨 있다면 항아리들을 어떻게 식별하겠읍니까?

 

방문자 : 거기서 반사는 어떻게 일어납니까?

 

마하리지 : 순수한 허공은 반사를 일으킬 수 없고 물의 허공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투명한 유리는 대상들을 반사하지 못하고, 그 뒷면에 불투명한 칠을 한 유리판만이 그 앞에 있는 대상들을 반사할 수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순수한 앎(知)은 그 안에 대상들을 포함하지 않고 대상들을 반사하지도 않읍니다.

제한하는 부가물(유리판의 뒷면의 은칠같은 반사면)인 마음이 있어야만 그것이 세계를 반사합니다.

세계는 삼매 속에서도 남아있지 않고 잠 속에서도 머물러 있지 않읍니다.

밝은 빛 속이나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환(幻)이 있을 수가 없읍니다.

희미한 빛 속이라야 밧줄이 뱀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순수의식은 빛으로만 남아 있는데, 그것이 순수한 앎(知)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일어나는 마음은 대상들이 별개로 있다고 착각합니다.

 

방문자 : 그러니까 마음이 곧 거울이군요.

 

마하리지 : 마음이라- 마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성(chit)과 생각(sankalpas,파동성변형의식)의 복합체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이 모든 것-거울 빛,어둠,반사를 만들어 냅니다.

 

방문자 :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마하리지 : 의식-허공은 순수한 앎(知)일 뿐입니다.그것이 마음의 근원입니다.

마음은 일어나는 그 순간에는 빛일 뿐이고, 나중에 "나는 이것이다"하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 "나"라는 생각이 개아(個我)와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처음 일어나는 빛은 순수한 마음, 마음 허공, 또는 이스와라라고 합니다.

그것으로부터 생긴 형태들이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이 모든 대상을 자체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마음 허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허공입니까?

허공이 대상들을 포용하듯이 그것도 생각들을 포용하고 있고, 그래서 마음 허공이라고 합니다.

또 물리적 허공이 전 우주의 삼라만상인 모든 거친 대상들을 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는 순수한 허공이듯이, 마음 허공도 그 자체는 순수한 의식-허공(의식의 뿌리)이라고 합니다.

이 마지막 허공은 의식 그 자체(근원)입니다.

그 안에는 어떤 사물도 들어있지 않읍니다.

그것은 순수한 앎(知)로써 머물러야 합니다.

 

방문자 : 왜 그것을 허공이라고 합니까? 물리적인 허공은 지각능력이 없읍니다.

 

마하리지 : 허공은 지각능력이 없는 물리적 허공 뿐 아니라, 순수한 知(앎)을 뜻하기도 합니다.

순수한 앎(知)은 대상들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아는 것은 상대적인 앎(知)입니다. 

순수한 형태의 知(앎)은 전체에 하나로써 펼쳐져 있으며, 독특하고 모든 것을 초월한 빛이지요 !

 

방문자 : 그러면, 우리는 명상할 때 그것을 상상하고 있어야 합니까?

 

마하리지 : 왜 상상합니까? 우리가 다른 것과 따로 떨어져 있을 때만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이 순수한 앎(知)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가 없읍니다.

오히려 그것만이 있지요. 그것을 어떻게 이렇다거나 저렇다고 말하거나 상상할 수 있겠읍니까?

 

방문자 :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마하리지 : 나 아닌 것(非我)만 제거하십시요.

 

방문자 : 이제 제대로 알 것 같읍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두 잊어 버립니다.

 

마하리지 : 잊어버린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잊어버렸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린다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따라서 망각도 의식-허공일 뿐입니다.

 

방문자 : 그러면 어째서 그것이 저에게 분명하지 않읍니까?

 

마하리지 : 의식(chit)은 知(앎)이며, 순수하고 단순합니다.

마음은 거기서 일어나는데, 그 마음은 생각(變調波動性)들로 이루어집니다.

어둠과 무지가 끼어들면 순수한 앎(知)은 그 진정한 모습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즉, 그것이 욕망,집착,증오 등으로 가득 찬 "나"와 "세계"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욕망들이 실재(實在)를 가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방문자 : 생각들은 어떻게 제거될 수 잇읍니까?

그것은 <진아지>에서 말하는 대로 <마음 눈의 눈>같은 것입니까?

 

마하리지 : 거기서 마음은 허공, 곧 존재(sat)를 나타내고, 눈은 知(chit)를 나타냅니다. 사트(존재)와 치트(의식) 둘이 합쳐서 우주를 이룹니다.

 

방문자 : 그것을 어떻게 깨닫읍니까?

 

마하리지 : <진아지>에서 지적한 대로 "마음 눈의 눈, 마음 허공의 허공--"ⓐ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앎 이면의 앎(知), 곧 마음 허공을 포함하는 의식-허공은 항상 밝게 빛나는 오직 하나로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注ⓐ; 잔아지 5연, - 진아인 안나말라이는, 허공과 다른 원소들을 아는, 눈과 다른 감관들을 보는,그러한 마음의 눈 이면의 눈이며, 생각이 벗어난 마음이 안으로 향할 때, 심장 안에서 빛나는 내적인 허공을 간직하고, 드러내고, 지각하는 존재. 안나말라이는 나자신의 진아로 나타나거니와, 정녕 은총이 필요하며, 사랑도 더해지네, 그러면 지복이 솟아나리.)

 

방문자 : 그래도 아직 모르겠읍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깨닫겠읍니까?

 

마하리지 : 또 그 <진아지>라는 시에서 "생각에서 벗어나 있고", " 내면으로 향한 마음 속에서만 깨달아진다"고 했읍니다.

따라서 생각에서 벗어나 심장안에 합일된 마음은 의식 그 자체입니다.

 

방문자 : 앞에서 말씀하신 마음-허공은 이스와라입니까, 히랴냐가르바 입니까?

 

마하리지 : 후자가 전자와 따로 떨어질 수 있읍니까? 그것은 이스와라이자 히라냐가르바이기도 합니다.

 

방문자 :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다릅니까?

 

마하리지 : 내재적 존재를 이스와라라고 합니다.

 

방문자 : 내재적 존재는 의식-허공일 뿐이지 않읍니까?

 

마하리지 : 내재성은 마야와 함께만 있을 수가 있읍니다.

그것은 마야와 함께 있는 존재의 知 (내가있다 앎)입니다.

여기서 미세한 자만심인 히라나가르바(우주적 자아)가 나오고, 후자에서 거친 자만심이 비라뜨(에고적 개아)가 나옵니다.

의식자아는 순수한 존재일 뿐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