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4. 14:14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어떻게 하면 마음을 올바른 길로 유지할 수 있읍니까?
마하리쉬 : 수행을 하면 됩니다. 마음에게 좋은 생각을 안겨 주십시요.
마음을 좋은 길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방문자 : 그러나 그것이 안정되지 않읍니다.
마하리지 :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점차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마음을 진아 안에 고정시켜라"
"수행과 무욕에 의해서" 라고 말합니다.
수행이 필요하지요. 진보는 느리겠지만,
방문자 : "진아 안에 고정시켜라" 할 때에 그 진아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그대의 자기를 모릅니까? 그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니면 그대의 존재성을 부인하겠읍니까?
그대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이 진아가 누구지?"하는 의문이 일어날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한편, 그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물을 수 없읍니다.
따라서 그 질문은 그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대가 누구인지 알아내십시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방문자 : 저는 많은 책을 읽었읍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진아로 돌아가지 않읍니다.
마하리쉬 : 진아는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 유식해 집니다.
그것이 책을 읽는 목적이고, 읽으면 그것이 성취됩니다.
방문자 : 아뜨마 샤끄샤트까라(眞我直覺, 頓悟)가 무엇입니까?
마하리지 : 그대는 아뜨마(진아)이고, 그 사끄샤트(지금여기)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까라(성취)가 들어설 자리가 어디에 있읍니까?
그런 질문은 그대가 자신을 비진아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니면 그대는 두개의 자기가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깨닫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어불성설이지요.
그 질문의 근저에는 그대가 자신을 거친 육체와 동일시함이 있읍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지금 일어났읍니다.
그대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런 질문이 일어났읍니까?
그대는 그때는 존재하지 않았읍니까? 분명히 잠속에서도 존재했지요.
이 두 상태간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지금은 그 질문이 일어나는데, 잠속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읍니까?
지금 그대는 자신이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주변의 사물을 둘러보면서(보는자와 보는대상의 이원화상태), 그와 비슷한 방식( 진아를 객관적인 대상으로 취급)으로 진아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습(習, 감각의식을 통해서 보는 주객이원화의 상대적인 견지)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감각기관들은 지각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대(진아)가 바로 보는 자입니다.
그 보는 자로써만 머물러 있으십시요.
달리 "보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깊은 잠이 들었을 때가 바로 그런 상태(주객이 없는 일원적인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때는 그런 질문이 일어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아뜨마 사끄샤뜨까라(진아 즉각깨달음)은 아나뜨마 니라사나(非진아(에고)의 포기)일 뿐입니다.
방문자 : 단 하나의 자아가 있읍니까? 아니면 더 많은 자아가 있읍니까?
마하리쉬 : 이 역시 혼돈에서 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대는 몸을 자기와 동일시합니다.
그대는 "여기 내가 있다. 여기 그가 있다. 남이 있다, 저것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다수의 육신들을 보면서 그 만큼 많은 자아들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대가 잠들었을 때도 "나는 여기서 자고 있는데, 깨어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지?"하고 물었읍니까?
그 문제에 관해 무슨 질문을 하기라도 했읍니까?
왜 질문이 일어나지 않았읍니까?
그것은 그대가 오직 하나이지, 여럿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문자 : 저의 진리(참된 모습)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그대 자신이 진리(참나)입니다.
(내 안에서) 다른 사람의 진리(참나)를 아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있읍니까?
진리(진아)와 별개로 그대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읍니까?
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대로 하여금 그런 질문을 하게 합니다.
그대가 존재한다는 것(that I am)자체가 진리입니다.
비진리라는 개념의 외투를 벗어버리고, 그대의 본질적 성품(내면진아)으로 머무르십시요.
모든 경전들은 그대에게 비진리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해 줄 뿐입니다.
비진리를 포기하십시요.
그러면 진리가 항상 순수하고 단순하게 빛나게 됩니다.
방문자 : 저의 진리와 저의 임무를 알고 싶읍니다.
마하리쉬 : 먼저 그대의 진리를 아십시요.
그리고 나서 그대의 임무가 무엇인지 물어도 됩니다.
임무를 알고 그것을 행하려면 그대가 존재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성을 깨닫고 나서 임무에 대해 물으십시요.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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