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2. 18:48ㆍ성인들 가르침/쌍카라차리아
내면의 동혈(洞穴)안에
존재나 비존재와는 다른 비이원적인 부라만이라고 하는 실재(實在)가 있다.
그 실재자체로 영원히 머무르는 자는 저 심장동혈 안에 확고히 안주하여,
육체의 컴컴한 동굴 속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비록 이것이 진리임을 알지만,
종종 그를 장애하는 시작없는 강력한 원습으로 말미암은 속박(윤회)때문에,
"내가 행위하는 자이고, 행위를 즐기는 자(享有者)이다"하는 생각이 그의 마음 속에 강하게 일어난다.
그런 느낌이 일어나는 순간 그대 자신의 노력으로,
자기(眞我) 안에 확고히 머무름으로써,
자기자신 바라보기(眞我觀)로써, 이러한 습을 제어하라.
바쉬슈타 같은 진인들은 원습이 말라 죽는 것이야말로 해탈이라고 선언하였다.
세간습(世間習, 외부세상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나 육신습(育身習, 육신의 외양이나 건강에 신경 쓰는 일), 혹은 경전습(經典習, 책을 자꾸 더 많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통해서는 진아지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윤회라는 감옥에서 해방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겹의 습이 족쇄라고 깨달은 이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세간,경전, 그리고 육체에 대한 집착들을 용감히 포기하고,
사트와(고요,조화,지켜봄)와 라자스(열정,활동)의 힘에 의하여 따마스(타락,외부적 욕망)를 극복하도록 힘차게 분투해야 하며,
그런다음 혼합된 사트와(일상삶에서의 지켜봄)로 라자스(활동성)를,
그 다음 순수한 사뜨와(내가 있다는 존재앎)로 혼합된 사트바(일상의 주시력)를 극복해야 한다.
또한 그대는 "내가 그것이다(soham,aham bramasmi)"와 같은 큰 말씀들을 통해 개아와 부라만이 다르지 않다고 선언하는 경전의 권위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확고한 결의와 자기 체험으로써,
<나는 개아가 아니라, 생각의 이미지를 주시하는 주시자"나"로써 체험되는 일체에 두루한 부라만이다>
"저 부라만이야말로 나다"라고 하는, 부라만과 자아(나)의 동일성에 대한 앎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육체 안에 있는 "나"라는 관념이 자취 하나없이 완전히 뿌리 뽑힐 때까지, 그리고 개아들과 세계가 하나의 꿈처럼 보일 때까지 부단히 명상해야 한다.
그는 탁발을 하고, 생리적인 육체기능을 영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없이, 언제 어느 때에도 잠이나 세속적인 대화, 혹은 70가지 감각대상들에 빠져서 진아를 잊어 버리는 일이 조금도 없게 하면서,
부단히 심장 안에서 집중하여 유일한 진아 안에 안주 함으로써,
원습없는 실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얻고 저 원습을 꾸준히 벗겨내어,
덧씌움의 결과로 끊임없이 나타나는 "나와 내것"이라는 느낌을,
육체와 감관기관으로부터 완전히 뿌리뽑아 버려야 한다.
물에 젖어서 나쁜 냄새로 가려진 백목단 덩어리는 그것을 갈아서 나쁜 냄새를 없애주면 본래의 향기가 다시 저절로 발산되듯이,
이 부단한 지(知) 수행이라고 하는 연마(練磨)를 통해 마음을 진아 안에 안주하게 하여 원습을 제거하면 평안이 진아 안에 자리잡게 된다.
요기는 그러한 안주에 의해 마음을 소멸하며,
그럼으로써 심장의 외부적인 비자아적 원습이 완전히 근절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까지 원습의 불가사이한 힘에 의해 가려져 있던 지고아의 체험이,마치 오염되지 않은 백단목의 향기처럼 청정하게 빛을 발한다.
-쌍카라차리아의 비베카츄다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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