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분별지혜(14)

2009. 1. 8. 20:33성인들 가르침/쌍카라차리아

 

 

 

[ 제자여 ! 붙잡을 수도 없고,

내버릴 수도 없으며,

마음과 언어로 포착할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일체에 두루한 이 부라만이야 말로 나이고,

그대이며, 또한 다른 많은 개인들이다.

 

<그대가 그것이다(Tat tvam asi)>같은 끝 말씀들은

<그것(Tat)>으로 알려진 부라만과 <그대(Tvam)>으로 알려진 개아는  동일성이라는 것을 드러내 준다.

 이 동일성은 <그것>과 <그대>라는 문자적인 의미에 의해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의 문자적 의미는 우주의 근인인 이슈와라의 마야이고,

<그대>의 문자적 의미는 개안의 다섯껍질이어서,

둘 다 실재하지 않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이다.

그것들의 성질은 해와 개똥벌래, 왕과 노예, 대양과 우물, 수미산과 원자처럼 서로 반대된다.

<그것>과 <그대>의 문자적 의미에 있어서 부라만과 개인 간에는 아무런 동일성도 있을 수 없으며,

경전에서 그 동일성을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방식이 아니다.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는 세가지 락사나(말의 2차적 의미) 중에서 자할 락사나와 아자할 락사나를 배제하고 자하-아자할 락사나를 취하면, <그가 저 데바닷다이다>라는 문구에서 우리는 (상이한 시간과 장소에 드러나는 데바닷따의) 모순되는 측면을 배제하고,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는) 데바닷따라는 사람의 동일성에 집중한다. *

 

그와 마찬가지로,

그대는 부라만 위에 덧씌어져 있는 이원성을 배척하는 베다서의 권위에 의거하거나,

그대 자신의 분별지에 의해서, 마치 밧줄 상의 뱀이나 꿈과 같이 덧씌워진 거짓된 대상인 부가물들을 <이건 아니다,저것도 아니다>하고 배제 할 수있다.

왕족인 사람의 방패문양이나 노예의 소유자 표식과 같은 속성들을 제거하면, 두사람 다 같은 인간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그것'과 '그대'에 관한> 이 문구는 이슈와라와 개인이라는 형상을 떠난 의식의 나머지 측면에서는 이슈와라와 개인의 성품이 동일함을 선언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양자(그것과 그대)의 단일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대 또한 큰 성인인 진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실재하지 않는 육체를 <나 아닌 것>으로 배척함으로써 부라만과 자기의 이 복된 동일성을 알라.

명석한 지성에 의해 그대자신이 곧 순수의식이고, 허공처럼 미묘하며, 항상 빛나는 참된 앎이자 지복인, 일체에 두루한 부라만임을 알라.

 

진흙에서 생겨 났고 진흙의 성품으로 되어 있는 항아리 등 모든 질그릇이 진흙일 뿐이듯이,

부라만에서 생겨났고 부라만의 성품으로 되어 있는 이 세계도 부라만일 뿐이다.

꿈에서 나타나는 영원하지 않은 공간,시간,감각대상, 그것들을 아는 자 등 일체가 거짓된 것이듯이,

이 생시에 자신의 무지로 인해 나타나는 육체, 감각기관, 생명기운,에고 등을 위시한 이 세계는 오직 환상일 뿐이며 실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전체세계는 유일하게 실재하는 부라만에서 방출되며, 부라만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극히 고요하고 완전하게 정청한, 비이원적 부라만이며,

진실로 <그것이 그대이다(Tat tvam asi)>

그것은 탄생등 여섯가지 몸의 변화(탄생,어림,성장,늙음,쇠약,죽음)나,

계급,관습,부족,가문,이름과 형상, 특징이나 속성이 없고,

장점이나 결함, 정신적인 질병이나 신체적인 질병이 없으며,

배곺음, 목마름, 슬픔,망상, 늙음 그리고 죽음의 여섯가지 악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공간,시간 혹은 객관대상이 없다.

그것은 어떤 언어로도 묘사할 수 없고, 지혜의 눈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요기의 심장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고,

어떤 감각기관에 의하여 지각되는 것이 아니며,

거친 마음으로는 그것을 알수없다.

 

그것은 미혹에 의해 투사되어 나타난 이 거짓된 세계의 바탕이며,

세계의 창조와 유지 소멸의 근원이다.

이름과 형상의 모든 세계는 그것의 결과이지만,

그 자체는 아무런 원인을 갖지 않는 지고의 원인이고,

그러면서도 원인이나 결과와는 별개이고, 존재나 비존재와도 별개다.

 

부라만은 금과 같이 온갖 이름과 형상, 속성, 변상,차별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속성도, 변상도, 차별상도 없고, 불균형도 없다.

 

그것은 파도 없는 바다처럼 고요하여 움직임도 없고,

영원하며, 무형상이고, 오점도 없고, 비할바 없고,

차별상없고, 영구히 해탈해 있으며,

불멸이고, 시작이 없고, 청정순수하며,그 넘어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고,

단일하고 부분도 없으며, 일체에 두루하고,

참된 앎이자 무한한 지복이며, 그 본질에 있어서 단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이 부라만, <그것이 그대이다>

 

이 진리에 대해,

예리한 지성으로 그대의 심장 안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동요없이,

자나깨나 명상하라.

 

그러면 그대는 손바닥 안의 물같이 명백하여 의심할 수 없는 실재지(實在知)를 얻게 될 것이다.

자기 군대의 한 가운데 있는 왕과 같이 육체의 여러기능들을 거느리고 있는 앎(眞知)이야말로  부라만의 형상인 진아임을 분별로써 알고,

다른 모든 별개의 대상들을 이 실재자체로 간주하라.

그리고 이 진아로써 항상 안주하라.

그러면 그대는 지복과 존재의 평안을 성취할 것이다.]

 

                                                          - 쌍카라차리아의 분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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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본문에서 라샤나(lakshana)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비이원론 베단타 철학에서 "내가 그것이다"라는 진리의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언어의 2차적인 의미를 이끌어내는 베단타 논리학이며, 쌍카라의 다른 저작인 <우빠데샤 사하스리>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읍니다. 락사라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주석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간추려 옮겨 보겠읍니다. 

 

락사라에는 세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할-락사라, 두번째는 아자할 락사라, 세째는 자하-아자랄 락사라이다.

첫째 자할 -락사라는 어떤 말의 1차적 의미가 배제되고 2차적 의미만 보유한다.

예를 들어 "강 위에 있는 마을"이란 말에서 "강"은 "강변"을 의미하므로 그 일차적 의미인 "강"은 완전히 배제된다.

두번째의 아자할 라샤나는 1차 의미가 보유되고 2차 의미는 배제된다.

예를 들면 "붉은 것이 달린다"라는 말에서, "붉은 것"은 "붉은 말"을 뜻하므로 1차적 의미인 "붉은 것"이 보유되지만, 그 함축된 의미인 "말"에 의해 그 의미가 보완된다.

세번째의 자할-아자할 라샤나는 1차적 의미의 일부는 배제되고 일부는 보유된다.

예를 들어 "그가 저 데바닷따이다"라는 말에서 "그"는 현재라는 시간과 장소에 조건지워진 데바닷따이고, "저"는 과거라는 시간과 장소에 조건지워진 데바닷따이다.

이때 "저"와 "그"라는 말의 의미의 일부, 즉 '과거라는 시간장소에 조건 지워진'과 '현재라는 장소 시간에 조건 지워진'것은 배제되고 과거와 현재에 관계없는 항상 동일한 존재의 의미일부가 보유된다. 

 

* 본문 내용 중에서 <부라만>은 <의식>이라고 대체해서 이해하면 됩니다.

흰두교식으로는 부라만이라고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보편의식이라고 이해해도 동일합니다. 부라만이 바로 보편의식 그자체이며, 定的인 보편의식이 절대부라만이고, 動的인 보편의식이 마야 또는 이스와라로 상징되고 있읍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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