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6. 19:36ㆍ성인들 가르침/벽암록
[수시]
물고기가 헤엄치면 흙탕물이 일어나고,
새가 날면 깃털이 떨어진다.
또렷이 주(主), 빈(賓)을 분별하고, 환하게 흑백을 구분한다.
이는 곧 밝은 거울이 대에 걸려 있는 듯하고,
밝은 구슬이 손아귀에 있는 듯하다.
한나라 사람이 거울 앞에 서면 한나라 사람이 비치고,
오랑캐가 서면 오랑캐가 비친다.
소리도 나타나고 모습도 비친다.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이런가?
거량해 보리라.
[본칙]
어떤 스님이 대수(大隨, 834~919)스님에게 물었다.
"겁화(劫火)가 훨훨 타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모두 무너지는데
'이것'도 따라서 무너집니까?"
-이것은 무슨 물건일까? 이 한 구절의 의미는 천하의 납승들도 찾지 못한다.
미리 긁어 놓고 가렵기를 기다리는구나.-
"무너지느니라"
-구멍없는 철추를 정면으로 던졌구나. 콧구멍(자기존재기반)을 뺏앗겼다.
입을 열기 이전에 속셈을 꿰뚫어 보았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가겠읍니다"
-도량 큰 어르신네지만 말에 휘말리고 말앗네. 과연 잘못알았구나.-
"그를 따라가거라 !"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 편이나 뒤에 쏜 화살이 깊히 박혔다.이를 많은 사람들이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한다. 강물이 깊으니 큰 배가 뜰 수 있고 진흙이 많으니 부처가 크구나. 따라간담 하면 어느 곳에 있겟으며 따라가지 않는다면 또 어떠할까? (원오스님이 후려쳤다)-
[평창]
대수법진 스님은 대안(大安, 793~883)스님의 법을 이어 받았는데, 동천의 염정사람으로 60여명의 선지식을 참방하였다. 왕년에 위산스님의 회하에 있으면서 화두(火頭)소임을 맡았는데, 하루는 위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여기에 여래 해 있었는데도 전혀 물어보지 않는구나"
"제가 무엇을 물어야 될까요?"
"모르겠다면 무엇이 부처인가를 묻도록 하여라"
대수스님이 손으로 위산스님의 입을 막아버리자 위산스님이 말하엿다.
"그대 이후로도 (그대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린 사람을 과연 내가 만날 수 있을까?"
그 뒤에 동천으로 되돌아가 먼저 붕구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차를 달여 오가는 길손을 3년 동안 대접하였으며 그 뒤에야 세간에 나아가 개산(開山)하고 대수산(大隨山)에 주석하였다.
어떤 스님이 "겁화가 훨훨 타서 삼천대천세계가 모조리 무너지는데 이것도 무너지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스님은 교학의 뜻으로 물었을 뿐이다.
교학에서는 "우주는 이뤄지고(成), 머물고(住),부서지고(壞),비었으며(空), 삼재(三災,火水風)의 겁화가 일어나 삼선천(三禪天)까지 무너진다"고 하였다.
그 스님은 원래 이말의 귀착점을 몰랐었다.
말해보라, 이것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알음알이로 이해하고 말하기를 "이것이란 중생의 본성"이라고 한다.
대수스님이 "무너진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그것을 따라가겠읍니다"라고 하였으며,대수스님은 다시 "따라 가거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음알이로 이해하여 찾으려 하나 찾을 수 없다.
만일 "그것을 따라간다"고 한다면, 어느 곳에 있으며, "그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떠할까?
듣지 못하였는냐. "간절하게 그리고 몸소 얻고자 한다면 물음을 가지고 묻지마라"는 말을,
흣날 어떤 스님이 소수산주에게 물었다.
"겁화가 훨훨 타서 대천세계가 모조리 무너지는데 이것도 무너집니까?"
"무너지지 않는다"
"왜 무너지지 않읍니까?"
"대천세계와 같기 때문이지"
무너진다고 말해도 사람들에게 장애가 되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장애가 된다.
이 스님이 대수스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일을 골똘히 생각하여 이 물음을 가지고서 곧바로 서주의 투자산을 찾아가자, 투자스님이 물었다.
"요즈음 어디 있다 왔느냐?"
"서촉 대수산에서 왔읍니다"
"대수스님은 무슨 소리를 하던가?"
스님이 앞에서 주고 받는 말들을 이야기 하자 투자스님은 향을 올리고 절을 올리면서 이르기를,
"서촉 땅에 고불(古佛)이 출세하였구나. 그대는 속히 돌아가도록 하라" 고 했다.
이 스님이 다시 대수산에 이르렀을 때는 대수스님은 벌써 돌아가신 뒤였다.
이 스님은 한바탕 수치를 겪었던 것이다.
그후 당나라에 경준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대수스님에 대해 시를 지었다.
전혀 따로이 법이 있는데
어느 누가 남종 혜능을 인가하였다 하는가?
한 구절 '그를 따라 가거라'라는 말이여 !
일천산사에 납승들을 치달리게 하는구나.
귀뚜라미는 섬돌의 풀잎에서 울고
귀신은 한밤중에 감실 등불에 절을 올린다.
읊조리는 소리는 외로운 창 밖에 끊기고
서성이는 발길엔 한스러운 마음 이길 수 없을래라.
그리하여 설두스님은 다음에 이 두 구절을 인용하여 송을 한다.
지금도 '무너진다'알아서도 안되며, '무너지지 않는다'고 알아서도 안된다.
결국 어떻게 알아야 할까? 어서 눈을 들어 보아라.
[송]
겁화의 불빛 속에 질문을 던지니
-무슨 말을 하느냐? 벌써 잘못 돼버렸다.-
납승이 오히려 두 겹 관문에 막혀 버렸구나.
-이 사람을 꼼작 달싹 못하게 했군.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백겹이 천겹이구나.
그렇지만 아직도 이리저리 돌아다닐 발이 있구나.-
가엾다. '그를 따라 가거라 !'라는 한 구절이여 !
-천하의 납승들이 이처럼 계교를 하는군. 천구절 만구절 할 필요가 없다.
그의 다리를 끊어 버리기가 무엇이 어렵겠는가?-
만리 밖에 홀로 애써 왔다갔다 하는군.
-업식이 꽉차 있구먼. 마주 지나쳤는데도 모르는구나. 이는 괜스리 짚신만 떨어뜨리는 짓이지.-
[평창]
설두스님이 상황에 딱 들어맞게 송을 하니,
구절 속에서 몸을 벗어 날 구석이 있었다.
"겁화의 불빛 속에 질문을 던지니, 납승이 오히려 두겹관문에 막혀 버렷다"고 하였는데,스님의 질문에는 먼저 '부서지는가', '부서지지 않는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이 두겹 관문이다.
깨친 사람이라면 '부서진다'말해도 몸을 벗어날 곳이 있으며, '부서지지 않는다'말해도 몸을 벗어날 곳이 있을 것이다.
"가엽다. '그를 따라 가거라 !'라는 구절이여 ! 만리 밖에 홀로 애써 왔다갔다 하는군 !"이라고 한 것은,
그 스님이 이를 가지고 투자스님에게 묻고 또 다시 대수스님에게 되돌아 왔던 것을 송한 것이다.
이는 "만리 밖에 애써 왔다갔다 한 것"이다.
-碧巖錄 第29章-
'성인들 가르침 > 벽암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곡의 주장자를 떨치다(麻谷振杖) (0) | 2009.07.06 |
---|---|
진주에서 나는 큰 무우 (0) | 2009.06.02 |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외물도 아니긴 한데--- (0) | 2008.12.01 |
가을바람에 완전히 드러나느니라. (0) | 2008.10.15 |
백장의 드높은 봉우리(百丈大雄) (0) | 2008.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