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39장, 돌처럼 천하고 낮은 바탕에 머무르시오

2008. 12. 11. 15:06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문]-백서본

 

昔之得一者

석지득일자

天得一以淸

천득일이청

地得一以寧

지득일이영

谷得一以靈

곡득일이영

侯王得一以爲正

후왕득일이위정

 

其致之也

기치지야

謂天毋已淸 將恐裂

위천무이청 장공열

謂地毋已寧 將恐發

위지무이영 장공발

謂神毋已靈 將恐歇

위신무이영 장공헐

謂谷毋已盈 將恐渴

위곡모이영 장공갈

謂侯王毋已貴以高  將恐蹶

위후왕무이귀이고  장공궐

 

故必貴而以賤爲本

고필귀이이천위본

必高矣而以下爲基

필고의이이하위기

夫是以侯王自謂曰

부시이후왕자위왈

孤, 寡, 不穀

고, 과, 불곡

此其賤之本與 非也?

차기천지본여 비야?

 

故致數譽无譽

고치수예무예

是故不欲祿祿若玉

시고불욕녹녹약옥

(石各)(石各)若石

락락약석

 

[해 석]

 

태초에 "하나"를 만난 것들이 있었으니,

 

하늘은 하나를 만나서 맑아지게 되었고.

땅은 하나를 만나서 안정되었으며

골짜기는 하나를 만나서 신령스러워졌고

후왕은 하나를 만나서 바른 다스림을 하게 되는 것이오.

 

이 "하나"를 버리면 그 의미가  (아래와 같이) 달라지게 되오.

 

오직 맑은 것 말고는 하늘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 할 것이오.  

 

오직 편안하게 안정된 것 말고는 땅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땅이 치솟아오를까 두려워 할 것이오.

 

오직 영묘한 것 말고는 신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

혹시나 신의 영묘함이 끝날까 두려워할 것이오.

 

오직 가득차 있는 것 말고는 깊은 샘물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샘물이 바짝 마를까 걱정할 것이오.

 

오직 고귀한 성품이 없으면, 후왕의 자격이 없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후왕이 폐위될까 두려워 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귀함은 필히 천한 것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하며,

높아지려고 한다면 필히 낮은 것으로  그 바탕을 삼아야 하오.

 

대체로 그러하기 때문에 후왕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서 이렇게 부르는 것이오.

- 어리석고, 모자르며, 복덕이 없는 사람.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천한 것으로 바탕을 삼는 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소? 

따라서 진실로 명예에 오르는 수단이란  낮고 천한  명예 없음이 되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옥같이 빛나는 복덕을 추구하지 말고,

돌처럼 투박하고 천한 것으로 바탕을 삼아 머무는 것이외다.

 

[해 설]

이번 39장은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에만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근본 바탕에 머무르라는 가르침입니다.

처음에 "一"인 절대 바탕 위에 덧씌워진 '하늘의 맑음, 땅의 안정됨, 의식의 영묘함,후왕의 옳바른 다스림',은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기 때문에 허상이며, 가장 낮은 절대바탕인 실재하는 道(一)에 머무르라는 말씀입니다.

즉, 내면적으로 고귀하게 되려면 나타난 현상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낮고 천한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물을 보는 자세 또는 관점이 180도 전도(轉倒)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문을 백서본으로 채택한 이유는 왕필본의 원문은 백서본에 비하여 글자를 많이 생략해 버려서, 백서본에서 말하고자 하는 뜻이 왜곡되어 해석될 가능성이 많아서, 아예 백서본 원문을 채택해서 해석했읍니다.

 

昔之得一者(석지득일자) : 처음에 하나를 만난 것들이 있으니,

昔; 옛날,처음,오래된,태초. 得; 얻다,깨닫다,이르다,이루어지다.만나다.

<昔>는 옛날,태초,처음,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시간상의 과거,옛날이나, 처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존재론적인 측면에서 가장 최초의 비현상적인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得>은 통상적으로 '얻다' 라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만,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만나다'라는 뜻으로 해석했읍니다.

<一>은 우주 현상세계가 나타나기 이전의 절대 본바탕을 뜻합니다.

<者>는 '~것' 또는 '~것들'의 뜻으로 아래 문장의 " 天,地, 谷,侯王"등을 말합니다.

 

이 우주현상세계는 전체가 의식의 뿌리인 보편의식에 의하여 나타나 보이는 것이지만, 보편의식은 오직 "하나"인 절대바탕으로 부터 나온 것이죠.

그래서 天地人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一"이라는 절대바탕이 있었읍니다.

이 절대바탕인 "一"을 보통 "無"라고도 표현 합니다만, 어떤 개념적인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 이것인데, 여기서는 이 절대바탕을 "一"로 묘사하고, 아래 문장에서 天地人谷은 이 "一"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읍니다. 

 

天得一以淸(천득일이청) : 하늘은 하나를 만나서 맑아지게 되었고.

 以: ~ 되다. 淸; 맑다.

직역하면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아지게 되었다>이렇게 해석이 됩니다만,

<得>을 "얻다"로 해석하면, 마치 "하늘"이 "一"보다 먼저 생겨난 것같이 잘못 생각될 수도 있으며, 하늘이 주체가 되고, 一은 보조적인 어떤 대상화가 되므로서, 절대바탕인 '一'의 의미가 '하늘'이라는 주체에 가려져 ,그 문장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가 못하는 것 같읍니다.

그래서 "得"을 "얻는다"라고 해석하지 않고, 저절로 "만나다"라고 해석했읍니다. 이하 문장도 같읍니다.

최초에는 "一"이라는 바탕 밖에 없었는데, 그 바탕 위에 뒤늦게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가 하늘이죠.

"하늘이 맑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절대바탕 "一"이 있었고,

절대바탕 "一" 위에 "하늘"이라는 이름과 "맑음"이라는 형상이 덧씌워져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맑다"는 단순히 겉표면에 나타난 현상이며, 실재는 절대바탕인 "一" 뿐입니다. 

절대바탕이 없다면 하늘도 없고, 맑음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이 맑다"에서 "맑다"라는 의미는 '흐리다 또는 맑다'라는 하늘의 기상상태를 말한다기 보다는 전체 우주허공의 텅빔상태를 의미하다고 보아야지 겠지요.

 

地得一以寧(지득일이영) : 땅은 하나를 만나서 안정되었으며,

寧;편안하다,

땅이라는 현상적 물질도 "一"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며, 땅의 특성인 "안정감"도 절대바탕인 "一"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땅은 오직 절대바탕인 "一"일 뿐이고, " 땅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도 "一"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절대바탕인 "一"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이 존재하는 실재이고, "땅의 안정감"은 눈이 보이는 현상이지만,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비실재(非實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은 감각으로 알수 있는 것만 실재한다고 여기며, 보이지 않고 알수없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죠.

이 장에서는 사람들의 이러한 전도되어 잘못된 관점을 지적하고 있읍니다.

 

谷得一以靈(곡득일이영) : 깊은 계곡은 하나를 만나서 신령스러워지고.

 靈; 신령,영험,신기하다,신령스럽다.영묘하다.

여기서 <谷>은 단순히 산골짜기를 뜻한다기 보다는,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재해 있는 신의식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겠지요.

사람의식의 가장 깊고 내밀한 곳은 의식의 뿌리인 순수존재의식이며,  영험한 신적인 의식입니다. 인간의식의 원초를 말하는 것이죠.

사람의 의식도 절대바탕인 "一"에 의해서 신령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侯王得一以爲正(후왕득일이위정) : 후왕은 하나를 만나서 바른 다스림을 하게 된다.

爲正; 바르게 다스린다.

제후들 중의 왕인 후왕은 절대바탕 "一"인 도를 얻어야 나라를 옯바르게 다스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왕에게 직접 충고하는 문장입니다.  

 

其致之也(기치지야) :

이 "하나"를 버리면  (아래와 같이) 전혀 (그 의미가)달라진다.

致; 내던지다. 보내다,그만두다,버리다.이르다,다하다.부르다.흥미. 也;다른.

이 문장은 여러 해석서나 주석서마다 제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있읍니다.

<其>는 위에서 주로 강조한 "하나"를 가리키는 대명사(그)입니다.

<致>는 통상적으로 '이르다, 다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만,

여기서는 "버리다,내던지다'라는 뜻을 활용해서 해석했읍니다.

<也>는 단순하게 문장 뒤에 붙는 어조사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뜻입니다.

맨위의 네개 문장에서 "하늘이 맑고,땅이 안정되고, 사람의식이 신령하고, 후왕이 바르게 다스린다."는 것은 오직 "하나"를 만나서 생긴 현상들인데,  만일 이 "하나"를 무시해서 버리게 되면, 아래 문장들에 표현한 것 처럼 사람들은 두려움을 지니고 살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즉 안정되어 있는 본체바탕인 "一"은 무시하고, 나타난 현상만을 그 본질이라고 여긴다면, 사람은 항상 무엇인가 변할 것이이라는 두려움과 공포감에 사로잡힌다는 것이죠.

절대바탕(一)을 도외시하고, 오직 나타난 일시적 현상에만 관점을 둔다는 내용입니다. 

 

謂天毋已淸 將恐裂(위천무이청 장공열) : 오직 맑은 것 말고는 하늘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 할 것이오.   

謂;이르다. 毋; 말다,아니다. 없다.已;이미,말다,그치다,그만두다,~일 뿐,따름,

恐; 두려워하다,아마도.將;혹시나,만약,혹은 거의,대부분,무릇,대저,오히려,또한,한편,

裂;찟어지다,터지다,쪼개지다.

다시 말하면,맑은 것만 하늘이라고 알고 있다면, 맑지 않으면 하늘이 부서질까봐 사람들이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하늘이 절대바탕인 "하나"라는 것을 잊고, 오직 겉으로 나타난 "맑음"현상만이 하늘이라고 믿는다면, 맑은 것이 갑자기 변하여 천지개벽이 될까봐 항상 공포감에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주현상의 근원은 절대 변하지 않는 바탕인 "一"이지만,나타난 우주현상자체는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써, 그 변하는 현상이 실재라고 잘못 믿고 있으면, 우주공간이 언제 부서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가질 수가 있을 겁니다.

여기서 "하늘이 맑다"라는 것은 하늘의 기상현상이 아니라, 우주공간의 허공의 텅빔을 말합니다.

 

謂地毋已寧 將恐發(위지무이영 장공발) :

오직 편안하게 안정된 것 말고는 땅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땅이 치솟아 오를까 두려워 할 것이오. 

發;일어나다.

언제나 평안하게 안정된 것만이 땅이라만 믿는다면, 그 안정된 상태가 언제 불안하게 흔들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땅이 안정되어있는 것은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인데, 그 안정된 현상만이 땅이라고 알고 있다면, 언제인가 혹시 그 안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한다는 것이죠.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타난 일시적 현상만을 실재한다고 볼뿐, 근원적인 절대바탕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보는 관점과 생각하는 자세가 전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謂神毋已靈 將恐歇(위신무이영 장공헐):

오직 영묘한 것이 아니면 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

혹시나 신의 영묘함이 끝날까 두려워할 것이오.

歇;쉬다,그치다,마르다. 

신이란 영묘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만일 영묘하지 않으면, 신의 능력이 없었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도 나타난 일시적 현상에만 관심을 주고, 보이지 않는 바탕을 무시하면, 혹시나 믿고 있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이란 종교적인 신 또는 신앙적인 어떤 대상을 말하는 것이겠죠. 

혹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깊은 신의식을 의미할 수도 있읍니다.

 

謂谷毋已盈 將恐渴(위곡모이영 장공갈)

오직 가득찬 것 이외에는 샘물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샘물이 바짝 마를까 걱정할 것이오.

渴 : 마르다. 

<谷>은 산과 산사이의 계곡이라기 보다, 깊은 샘물을 말하는 것 같읍니다.

깊은 샘물은 항상 가득차서 넘쳐 흐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항상 넘쳐 흘러 내리던 샘물이 갑자기 쭐어든다면, 혹시나 샘물이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나겠죠.

샘물은 넘쳐 흘를 수도 있고, 갈수기엔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샘물이 약간 줄어들게 되면 혹시나 불길한 징조가 마을에서 생길 것이라는 미신을 믿으면서 공포에 떨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나타난 현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 믿고 있는 현상을 잃어버릴까 보아 두려워하는 것이죠.

그러나 나타난 현상이면에는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 실재의 절대바탕인 <一>이 있읍니다.

이 절대바탕인 <一>을 잊으므로서 일시적 현상에만 집착하므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謂侯王毋已貴以高  張恐蹶(위후왕무이귀이고  장공궐) :

오직 고귀한 성품 이외에는 후왕의 자격이 없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후왕이 폐위될까 두려워 할 것이외다. 

蹶;넘어지다,거꾸러지다.밟다.

고귀한  성품만을 가져야만 후왕이라고 규정한다면, 혹시나 후왕은 지위를 잃어버릴까 보아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고귀한 성품이란 후왕이 가질 수도 있는 일부 조건은 되겠지만, 그 성품자체가 후왕의 필수요건은 아니겠죠.

道는 무위자연적인 성품으로 그때 그때 자연 상황에 맞게 다양한 조화를 이루어 펼쳐지는 자유자재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인 상태인데, 고귀한 성품이라는 것은 어떤 한단면의 고정적인 양태로써, 그것이 왕의 고정된 성품으로만 알고 있으면 왕이 그 고귀한 성품을 보이지 않으면 왕으로써의 권위를 잃어버릴까 보아 불안해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타난 어떤 일정 현상과 성품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 내면의 道인 절대바탕 "一"을 보라는 것입니다. 

 

故必貴而以賤爲本(고필귀이이천위본) :그러므로 귀함은 필히 천한 것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必高矣而以下爲基(필고의이이하위기) : 높아지려고 한다면 필히 낮은 것으로  그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고귀하게 드러난 현상은 필히 보이지 않는 바탕으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항상 비천하고 낮은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위가 귀하고 높아지면 언젠가는 낮아질 수 있는 것이므로 낮게 떨어질까 보아 불안하겠지만, 아예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 머물러 있다면 떨어진다는 불안감은 없겠지요. 한마디로 세속적인 명예나 욕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가장 가치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 성품이란 가장 낮은 절대 바탕이라는 뜻입니다. 

 

夫是以侯王自謂曰(부시이후왕자위왈)

: 대저 그러하기 때문에 후왕은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낮추어서 부르는데, 

孤, 寡, 不穀(고, 과, 불곡) : 어리석은 사람, 모자른 사람, 복덕이 없는 사람.

孤;외롭다,무지하다,어리석다, 寡 ; 적다,작다, 不穀; 여물지 않음.복없음

그래서 왕들이 대부분 남에게 자신을 부를 때에 스스로를 孤人(무지한 사람), 寡人(모자른 사람), 不穀人(복덕이 모자른 사람)이라고 낮추어서 부른다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왕이지만 스스로를 가장 천하고,어리석고,박복한 사람으로 가장 낯추고 겸손한 말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이조시대 때의 임금들도 그렇게 자신을 낮추어서 부른 것 같읍니다.

 

此其賤之本與 非也?(차기천지본여 비야?):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천한 것으로 바탕을 삼는 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위의 문장에서 왕이 자신에 대해 신하들에게 겸손하게 부르는 자세(고인,과인 불곡인)가 바로 자신을 낮추어서 가장 천한 것을 바탕으로 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되 묻는 형태로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 말이 세월이 오래되어 형식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결국은 그 원래 의미조차도 잊은 채 관습적으로 말로만 그렇게 불러오게  된 것이죠. 

 

故致數譽无譽(고치수예무예) : 그러므로 (진실로)명예에 이르는 방법이란 가장 낮고 천한 명예없음에 머무르는 것이다.

致; 이르다, 다다르다,數 ; 수단,방법, 譽;기리다,즐기다,찬양하다.명예,영예

이문장도 해석서마다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있읍니다.

그러나 바로 위의 문장들이 "고귀한 것은 천한 것으로 바탕을 삼는다" 라는 뜻의 결론적인 문장이므로, 이 뜻에 적합하게 해석이 되어야 겠지요.

<致>는 '이루다,이르르다'의  뜻이며, <數>는 <수단,방법>등이 뜻이 있으므로,

<致數>는 <이르르는 수단 또는 방법>의 뜻이고,

<致數譽>는 <명예에 이르르는 수단>이라고 풀이가 됩니다.

따라서 - 그러므로 (진정한) 명예에 이르르는 방법은 낮고 천한 명예없음인 것이다- 라고 해석이 되겠죠.

진실로 명예가 높아진다는 것은 道 또는 절대바탕(一)에 머무는 것으로, 낮고 천한 명예없음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이전 문장들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맺어 주게 됩니다. 

 

是故不欲祿祿若玉(시고불욕녹녹약옥):

그러므로 옥같이 빛나는 복덕을 추구하지 말고

(石各)(石各)若石(락락약석) : 돌처럼 투박하고 천한 것이 되라.

祿;녹,복, (石各) : 자갈,산위의 바위

 

옥같이 빛나는 복덕이란 고귀함, 화려함등, 겉 표면으로 드러난 현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겉으로만 드러나는 화려한 현상을 추구하지 말고,

돌처럼 투박하고 천하여  돗보이지 않는 평범한 본바탕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돌처럼 투박하고 천한 것은 평범성, 보편성, 공통성, 드러나지 않는 것을 뜻하며, 道를 말합니다.

앞서 38장의 맨 마지막 결론인 '겉껍질을 버리고 속알맹이 만 취한다'라는 뜻과 거의 비슷한 결론적입니다.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