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6. 13:44ㆍ성인들 가르침/쌍카라차리아
이에 대해 제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스승님 ! 다섯껍질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배제하고 나서 보니, 공(空)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읍니다. 그런데 참나인 '나-나'라고 하는 것이 어디 있읍니까?"
스승이 대답한다.
[ 학식있는 제자여 ! 그대는 깊은 탐구에 의해서 이미 진리를 말했다.
<어떤 하나가 그것과 다른 어떤 것을 "이것"이라고 자각한다면,
그 하나는 다른 어떤 것의 주시자가 된다. 그러한 자각이 없으면 주시자도 없다>고 하는 분별지(分別知)를 활용하라.
즉, 무상(無常)한 온갖 형상이나 변상(變相)들과 결합되어 있는 에고를 비롯한 대상물들과,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공(空)의 넘어에서 앎(知)의 성품으로 홀로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주시자이다.
나아가 그 자신의 빛을 통해서 이 전체를 말없이 지켜보며,
스스로를 자각하는 주시자로써 머물러 있도록 하라.
그리고 생시,꿈, 깊은 잠의 세가지 상태 이전에서 오직 유일하게 홀로 존재하는 자아로써, 심장 안에서 '나-나'라고 하는 의식의 빛을 스스로 발하고 있는 근원적 태양으로써 , 이 영원하고 말없는 앎(知)-지복인 진아가 곧 '나'라는 것을,
그대의 아주 예리한 지성으로써 알도록 하라.
바보는 항아리의 물에 비친 해의 영상(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해라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아리와 물과 영상을 배제하고,
하늘에 홀로 떠서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이 세가지를 다 비추면서 스스로 빛나는 해를,
있는 그대로 알고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지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해 육체의식의 눈인 지성(知性)이라는 부속장치 안에서 나타나는 진아의 영상(影像)인 개아(에고)를 '나'라고 여긴다.
그러나 분별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육체, 지성, 그리고 의식의 반사된 빛을 모두 배제하고,
이 세가지를 비추면서 심장의 공간 속에 단일하게 머므르고 있는 자신의 진아,
즉 영원하고, 일체에 두루하고, 일체를 비추며, 미묘하고,
경험적이며, 존재나 비존재와는 다르고, 안도 밖도 없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절대로 나눠질수없는 앎(知)의 성품을 지닌 자신의 본래모습인 진아를 잘 탐구해 들어 감으로써, 태어남, 죽음 등에 대한 아무 두려움 없이 그리고 아무 괴로움없이, 확고한 지복의 성품이 된다.
참된 앎(眞知)이자, 무한한 지복이며, 단일한 본질로써,
영원하고, 무한하며, 스스로 분명하고,순수하고,독립적이고,
무차별한 부라만을 있는 그대로 '나'로써 체험하여 깨달은 진인은,
다시는 이 윤회계로 돌아오는 일 없이 저 비이원적 지복인 부라만 자체가 된다.
이 '부라만이 나다'라는 부라만과 자기의 동일하다는 자각(自覺)이야 말로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깨달음의 능력이다.
해탈을 열망하는 자에게는 이러한 부라만인 진아에 대한 앎(眞知) 외에는
생과 사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다른 길이 없으므로,
그대도 "나는 부라만이다(Aham Brahmasmi)"
"부라만이 나다(Brahmham)"
"브라만이야 말로 나다(Brahmaivaham)"라는 것을
그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으로써 깨닫도록 하라.]
[이 부라만은 그 안에서 어떤 것도 별개로 구분되지 않는 지고의 비이원성이다.
진흙으로 만든 항아리에는 진흙의 형태 이외에 어떤 다른 형상도 없으며,
진흙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항아리 모양을 보여줄수 없다.
따라서 미혹에 의해 상상되어 그런 이름과 형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된 항아리는
오직 진흙(동적의식)으로써만 실재할 뿐이며,
그러한 진흙의 성품(파동의식)으로써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현상이란 바탕 위에 덧 씌워져서 바탕과 별개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주 전체가 미혹에 의해 그 바탕과 혼동되어 나타난 보인 것일 뿐이다.
이렇게 덧씌워진 것들은 밧줄 상의 뱀과 같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순전히 가공적(假空的)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진주모조개의 바탕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은(銀)은
그 바탕인 진주모조개를 떠나서는 존재성이 없고 진주모 조개 자체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상계는 그것의 바탕인 부라만을 떠나서는 아무런 존재성도 없다.
무지와 그릇된 착각으로 인해 미혹된 자에게는
현상계에 나타난 온갖 형상들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리고 마치 실재하는 듯이 보이는 어떤 객관대상이든 간에,
모두가 헛된 환영일 뿐이다.
구도자들이여 !
있는 그대로 보는 앎 안에서는 그 모두가 부라만으로 부터 기인된 것들이며,
저 바탕인 부라만 위에 덧 씌워져 보이는 그림자일 뿐이고,
미혹으로 인해 바탕인 부라만과 혼동되어 마치 실재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이름일 뿐이고,
우우 한 방울 만큼도 실재하지 못하는 헛된 환상일 뿐이며,
저 바탕인 부라만 안에서는 아무런 존재성조차 없다.
그것들은 떠오름도 없고, 가라앉음도 없는 헛것이며,
존재-의식-지복인 부라만 만이 실재(實在)로써 존재한다.
만약 현상계가 부라만 안에서 조금이라도 실재로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라만의 완전한 실재성(實在性)을 손상할 것이며,
또한 '이 세계는 실로 부라만이다'라고 분명한 언어로 선언하는
아타르바 베다의 권위에 저촉될 것이며,
또한 일체를 아는 이슈바라가 " 모든 원소들은 내안에 있지 않고, 불가분의 전체인 나는 그것들 안에 있지 않다"고 했을 때, 거짓말을 한 것이 될 것이다.
진정한 사두인 큰 성인은 이러한 모순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깊은 잠 속에서는 세계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만약 탐구해 보면 그것은 꿈의 세계처럼 공허하고 거짓된 것으로 드러난다.
그와같이 현상계가 실재한다고 말하는 저 미혹된 바보들의 말은,
잠을 자면서 하는 잠꼬대처럼 그릇된 것이다.
따라서 부라만이야 말로 어디에서나 단일하면서도 완전하게 빛나고 있다.
비이원적이고, 형상이 없고, 행위함이 없으며, 드러나지 않고,
불멸이며, 측량할 수 없고, 시작도 끝고 없고, 참되고, 평안하고,
청정순수하며, 지복의 정수를 그 성품으로 하고, 마야에 의해 창조된 일체의 차별이 없는, 영원하고 지속적이며, 부분이 없고. 흠이 없고, 이름이 없고, 무차별하며, 스스로 빛을 발하고,
'아는 자 -앎-알려진 대상'의 3요소를 넘어서 있는,
텅 비어 있고, 절대적이고, 끊임없고, 순수한 영(靈)이며,
영구히 빛나는 이 빠라부라만인 實在를, 진인들은 알고 있다.]
-쌍카라차리아의 분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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