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의식 그자체 이며, 생명기운(生氣)의 에너지이다.

2008. 11. 29. 15:23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운길산 수종사 수백년 된 은행나무>

 

 

실제적인 신(神)이란 것은 존재, 의식, 지복(사트,치트 아난다)을 말한다.

육체 안에 깃들어 있는 그 의식이 바로 神이다.

 

뱀 또는 말로부터, 갑작스러운 사고로부터,

육체를 보호하려는 그 "자각"이 의식이며,

그것이 바로 神이다.

이 자각(自覺)이 신의 증거다.

 

우리는 자신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육체 안에서 "나"라고 여길만 한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잘못된 착각과 무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하나의 육체가 자기자신이라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지만,

그러나 그대가 육체를 전체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해 본다면,

그 육체 속의 어디에서도 "그대" 또는 "나"라는 어떤 정체성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너"와 "나"의 느낌은 신(神) 안에는 없다.

우리는 五元素(地水火風空)로 된 이 삼라만상을 보지만,

이 삼라만상은 모두가 생기 에너지(chaitanya,생명기운파동)로 부터 나타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은 오직 생명기운의 에너지일 뿐이다.

 

오직 "하나"만이 실재(實在)한다고 이해한 사람은

탄생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턱수염, 콧수염, 머리카락은 모두가 머리부분에 나는 털일 뿐이다.

이름,형태,색갈 등은 모두가 거짓인 것이다.

일단 그대가 이 생명기운을 잘 이해하게 되면 ,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헤아릴 수없이  다종다양한 이 삼라만상 속에서,

신은 단 하나만 있을 뿐이며, 전체에 두루해 있다.

 

그대가 오원소를 세밀하게 분석해 봄으로써, 

생명기운이 무엇인가를 그대는 알게 된다.

" 그대가 그것이다"라고 하는 위대한 말씀(베다)의 의미는,

그대가 부라만(절대신)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본래부터 이대로 있어 왔던 것이 우리들의 본성이며,

에고란 잠깐 불다가 그치는 바람과 같다.


스승에게 순복한다는 것은 어떤 애착심도 사라져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자면,

여기서 애착심이 사라져야 된다고 말하는 의미는,

어떤 권위적인 위협에 굴복 당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한 개인의 위대함을 본받기 위하여 일종의 부담감 또는 압박감을 받는 것도 아니며,

또는 어떤 철학이념이나 혹은 어떤 도인에게 압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부담이나 압박이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압박감과 부담감이  있다면 전혀 잘못된 것이다.

 

우리들이 항상 지니고 있는 본래 그대로의 참된 본성에는 약간의 부담감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의 어떤 시간에도 그런 부담감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으며,  또한 그런 압박을 주는 어떤 사람도 있을 수 없고,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진정한 본성을 얻기 위하여 다투고 애써야 되는 그런 어떤 일도 또한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 삼라만상 안의 모든 곳과 모든 시간 안에서 우리들을 압박하거나 방해하는 장애물들은,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잘못된 착각과 혼미한 무지 때문이다.

이 현상세계에서 자기 자신 이외에는, 어떤 다른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복이란 어떤 애착도 없이, 이와 같이 부담감없는 것이어야 만 한다. 


주의깊게 자신을 지켜보는 것에 의하여, 자기가 별개로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게 되고,

의식이 사라진 안정된 자세가 되어 있을 때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이 이 순수생명기운(chaitanya)이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무심(nivritti)만이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말하는 자가 사라질 때에, 그 상태를 "無心" 또는 "unmani"라고 부른다.

 

꾸짓는 것이 없을 때에, 칭찬해주는 누구인가가 있겠는가?  

변기를 자기 위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세가지 까르마(三業;과거,현재,행위)의 업보 속에 있는가? 

왜 어떤 벌금을 왕에게 지불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왕이라는 사람을 칭찬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생기없는 물질적 육체가 어떤 과거의 업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

 

육체도 부라만이고, 진아(아트만)도 부라만이다.

"절대 眞知"에 의해서, 지성(知性)의 껍질은 사라진다.

명상자는 명상 속에서 사라진다.

명상하고 있는 주체인 "나"는 명상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 세상의 원인인 "나"는 이 세상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사라져 버렸던 세상이 다시 영광의 빛을 받아서 돌아 온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부라만이 되어 돌아 왔다.

모든 나타난 현상은 부라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정체성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에고는 죽었다.

"나"라는 정체성이 죽은 것이다.

이 속세에 남겨진  죄는 모두가 사라져 없어졌다.

속박이 없는 것은 속박을 당하지도 않고, 속박 이라는 자체가 더 이상 없다.

신은 어떤 속박도 없고, 자유조차도 있을 수 없다.

 

온갖 속박으로 부터 해방된 신의 하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또한 다른 모든 것으로 부터 풀려났다.

그들은 이제 구속된 하인으로 남아 있지 않고,

부라만으로 자유로워졌다.


                                                       - 9, 26, 1935.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