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2. 20:18ㆍ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 문]- 백서본
上德不德 是以有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上德無爲 而無以爲也
상덕무위 이무이위야
上仁爲之 而無以爲也
상인위지 이무이위야
上義爲之 而有以爲也
상의위지 이유이위야
上禮爲之 以莫之應也
상례위지 이막지응야
則壤臂而(才乃)之 故失道
칙양비이양지 고실도
失道矣而后德
실도의이후덕
失德而后仁
실덕이후인
失仁而后義
실인이후의
失義而后禮
실의이후례
夫禮者
부례자
忠信之薄也 而亂之首也
충신지박야 이난지수야
前識者
전식자
道之華也 而愚之首也
도지화야 이우지수야
是以大丈夫
시이대장부
居其厚而不居其薄
거기후이불거기박
居其實而不居其華
거기실이부거기화
故去彼而取此
고거피이취차
[ 해 석 ]
德이 높으면 德을 넘어서 있으므로, 德이라는 말조차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덕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소.
德이 타락하면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德이라는 말만 앞에 내세우니
그래서 오히려 '덕이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소이다.
德이 높은 이는 일부러 어떤 행위도 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덕행을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소.
어짐(仁)을 내세우는 이는 의도적으로 어진 행위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진 행위를 하도록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소.
의로움(義)을 내세우는 이는 의도적으로 의로운 행위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억지로 의로운 行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오.
예(禮)를 내세우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예절 행위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잘 따라하지 않으면,
즉시 팔을 걷어 붙히고 억지로 잡아 이끌어서 강제로 시키니,
이 때문에 자연스러운 道를 잃게 되는 것이오.
道를 잃은 후에는 德을 높히게 되고.
德을 잃은 후에는 仁(어짐)을 중시하게 되며
仁을 잃은 후에는 義(옳음)를 강조하게 되고,
義를 잃은 후에는 예절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오.
대저 禮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정성과 믿음이 얇아져서 생긴 것이며
인간관계가 어지러워진 시초라고 말할 수가 있소이다.
앞서 알려진 것들(仁義禮)은
道라는 것으로 겉치장한 껍데기 말일 뿐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일 뿐이오.
그러므로 진실로 성숙한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 도의 두터움에 머무르지,
겉으로 드러내는 얇팍한 행위에 머무르지 않으며,
내면의 본질 속에 머무르지, 겉껍질에 머물지 않는 것이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겉껍질은 버리고, 내면의 본질만을 취하는 것이외다.
[해 설]
이번 38장은 백서본에서 덕장의 첫부분으로서, 덕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규정하면서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덕의 핵심인 仁,義 禮, 등의 개념을 비판하고 있읍니다.
이장은 곽점본에는 없으며, 아마도 백서본 형성시기에 노자의 무위자연적인 도의 입장에서 도가계통의 학자가 유가의 공맹자 도덕개념을 비판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 같읍니다.
즉, 노자의 도덕은 무위자연에 입각해서, 있는 그대의 인간 본성을 德이라고 하는 반면, 공맹자가 주장하는 유가의 仁,義,禮,는 인의적이며, 억지로 지어낸 말과 개념의 행위이기 때문에 덕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백서본의 원문을 채택한 것은 왕필본에서는 불필요한 문장이 한두문장 덧 붙혀 있고, 또 원래 붙어 있어야 할 몇개 글자를 생략해 버려서 아예 백서본 원문을 선택해서 해석해 보았읍니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上德不德; 덕이 높아지면 (덕을 초월해 있으므로) 덕이라는 말조차 하지 않으니,
是以有德 ; (오히려) 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덕이 높아진다는 것은 도의 절대바탕에 머문다는 것이고, 도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며, 모든 행위와 개념을 초월해 있는 상태이므로 덕이라는 말이나 개념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덕이라는 것입니다.
덕행을 한다는 생각조차 없으므로 진짜로 순수한 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노자도덕경의 <德>과 공맹자의 유교에서 말하는 <德>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가 있읍니다.
일반상식적으로 <덕>이라 함은 인간 관계에서 어질고 너그러운 윤리적 품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읍니다.
이런 점에서는 노자나 유가의 <덕>에 대한 개념이 비슷해 보입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이 장에서의 도덕경 내용입니다.
노자 도덕경에서 말하는 <德>은 최고절대바탕인 <道>의 드러난 품성과 무위행을 말하는데, 이것은 의식측면에서 보자면 '절대의식'에서 나온 '보편적 의식'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전체자연의 보편성 의식을 <德>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들간의 인간관계에서의 도덕적 윤리적 품성 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무생물을 포함한 전체 자연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절대신과 인간의 중간지대의 보편적인 의식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따라서 절대바탕에 다달은 도인이 저절로(무위적으로) 나타나는 행위와 품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자의 <덕>은 일원적인 바탕에 안주하는 도인의 품성과 무위행이며,
인간이 원래부터 타고난 보편적인 자연적 품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읍니다.
반면에 이장에서 비판하고 있는 유가의 덕인 仁(어짐), 義(옳음), 禮(예절)는 단순히 인간사회에 한정된 이원적이며,상대적이며, 인간의식이 인의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이며 말일 뿐이라고 단정하고 있읍니다.
노자의 <덕>은 전체 우주적이며,자연적이고, 항상 일정하고 일원적인 실재에서 나온 것이라면,
유가의 덕은 인간사회에 한정되어 있고, 인의적이며,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노자의 <덕>은 최고의 절대바탕의 무위적인 입장에서 자연적으로 인간의 타고난 품성으로 본 것이고,
유가의 <덕>은 이원적이며 인의적으로 지어낸,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성을 가진 일종의 개념적인 방편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下德不失德; 덕에서 타락하면 덕을 잃지 않으려고 덕이라는 말을 앞에 내세우니
是以無德 ; (오히려) 덕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타고난 자연적인 품성으로서의 <덕>이 타락하면, 그 덕을 회복하기 위해서 <덕>이라는 인간 품성을 개념적인 말로 내세우기 때문에, 이것은 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덕의 품성은 잃어버리고, 덕이라는 말과 개념만 앞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해석서들은 上德과 下德을 "높은 덕"과 "낮은 덕"으로 덕의 수준을 구분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으나, 노자의 덕은 높은 덕,낮은 덕, 중간 덕, 또는 더러운 덕, 깨끗한 덕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로지 보편적인 인간의식이라는 "德"이 "道" 아래에 있을 뿐이며, 덕이 높아지면 "道"가 되는 것이고, 德이 낮아지면 이원화적인 개인적인 의식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자 도덕경에서의 <德>은 가장 높은 道와 인간개인의식의 중간 매듭인 보편의식(존재의식)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德의 개념을 잘 모른 상태에서 이장을 해석을 하면, 마치 높은 덕과 낮은 덕이 따로 따로 있는 것처럼 해설하는 분도 있는 것 같읍니다.
물론 유가적인 덕이나, 일상생활에서 보통 덕이 높다, 낮다,라고 수준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있으나, 그런 경우에는 이원화 개인의식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노자 도덕경에서의 덕은 오직 하나 밖에 없으며, 어떤 구분도 할 수가 없읍니다.
上德無爲 而無以爲也
上德無爲 ; 덕이 높은 이는 어떤 행위도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而無以爲也 ; 다른사람에게 덕행을 하도록 강요하지도 않는다.
덕이 높은 것은 도를 성취한 도인을 말하며, 도인은 인위적인 행위가 없고, 무위자연적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덕을 행하라고도 강요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품성인 <德>을 의도성을 가지고 행한다는 것은 무위자연적인 것을 파괴하는 인의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而無以爲也>에서 맨끝의 <也>는 보통 어조사로 쓰이는 어조사<也>이지만, 이문장에서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의 <他>라는 글자를 빌려쓴 것 같읍니다.
그런데 왕필본에서는 이 <也>를 문장 끝에 붙히는 어조사로 착각하여 생략해 버려서, 왕필본만을 번역한 사람들은 번역내용이 약간 다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읍니다.
이후 문장도 마찬가지로 <也>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上仁爲之 而無以爲也
上仁爲之 ; 어짐을 내세우는 이는 의도적으로 어진 행위는 하지만
而無以爲也 ; 다른사람에게 어질게 행위하도록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上仁>이라는 말은 <높은 어짐>이라는 뜻이 아니라, <仁을 높힌다>는 뜻이며,
<어짐>이 인간품성 중에서 가장 높은 <德>이라고 내세운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공자류의 유가적인 도덕개념을 숭상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죠.
<어짐>이 가장 높은 <덕>이라고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은 어진 품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어진 행위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실천하는 어진 행위는 그것이 무위적으로 원래부터 있는 타고난 그대로의 본성이 아니라, 한사람의 의도적인 행위이며, 비록 남에게는 강요는 하지 않지만, 그런 행위도 상대적으로 억지로 짓는 의도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유가에서는 이 <仁>을 가장 높은 덕성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上義爲之 而有以爲也
上義爲之; 의로움을 내세우는 이는 의도적으로 의로운 행위를 하면서
而有以爲也 ; 다른 사람에게도 의로운 행위를 하도록 억지로 강요함이 있다.
이 <義>도 유가에서 주장하는 덕성이며,
<옳음>을 덕이라고 내세우는 사람은 자신은 <義>를 일부러 행하고, 또한 남들에게도 <義>를 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자연스럽지 못하게 억지 행위를 강요한다는 말입니다.
<義>라는 개념은 인간사회의 변천에 따라 시대마다 그 개념기준이 다르고, 또 각지역의 다른 나라 또는 지방과 집단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 특정기준에 맞는 <옳바름>의 개념기준을 한정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규제하려는 도구가 되기 쉽죠.
있는 그대로 지니고 있는 인간본성을 제한시키는 개념이 된다는 것입니다.
上禮爲之 以莫之應也 則壤臂而(才乃)之 故失道
上禮爲之: 예절을 내세우는 이는 의도적으로 예절행위를 하면서도
以莫之應也 : 다른사람이 잘 따라하지 않으면
則壤臂而(才乃)之
: 곧 팔을 걷어붙히고 강제로 잡아 이끌어 시키니,故失道 : 이때문에 도를 잃게 된다.
則;곧,즉. 攘 ;물리치다,걷어 올리다. 臂; 팔,팔뚝. (才乃) ; 잡아끌다.
<禮>를 德이라고 내세우는 이는 스스로도 예절을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따라 오지 않으면 강제로 규제를 만들어서 억지로라도 예절을 지키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무위 자연적인 것을 주제로 하는 노자 입장에서는 완전히 인의적이며,억지 행위이므로 전혀 <덕>으로 간주 할 수 없는 비도덕적인 행위이며, 따라서 자연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를 잃어 버렸다"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인간사회가 자연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타락했을 때에 나타나는 자연에 반하는 규제행위라는 것입니다.
失道矣而后德
; 도를 잃은 후에는 덕을 높히게 되고.
矣(의) ;어조사, 后: 뒤에
절대바탕에 무위적으로 머무르는 도(神)를 잃어버리니,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의식인 <德>을 숭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태고시대의 무위적인 도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도의 믿음이 쇠퇴하고, 인간 위주의 덕성을 숭상하게 되었다는 뜻으로도 이해 할 수 있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인간 원래 본성을 차차 잃어가면서 타락하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읍니다.
失德而后仁
; 德을 잃은 후에는 仁(어짐)을 중시하게 되며,
자연적인 보편성 마음을 잊어 버린 후에는 이원화적인 인간 마음의 "어짐"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인간 마음 중에서는 "너그러운 마음"이 이기적인 협소한 마음보다는 덜 타락한 것입니다만, 이것도 이원화의 상대적인 인간 품성일 수 밖에 없읍니다.
失仁而后義
; 인을 잃은 후에는 義(옳음)를 강조하게 되고,
인간적인 너그러운 마음을 잃어 버리니, 인간관계에서 <옳바름>이라는 기준을 만들어서 그 <義>이라는 개념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失義而后禮
; 의를 잃은 후에는 예를 강요하게 된다.
그 인간성의 기준되는 <義>마저 잃어 버리니,
이제는 아예 <禮>라는 행동규율을 만들어서 억지로 예절을 지키도록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夫禮者 忠信之薄也 而亂之首也
夫禮者; 대저 예라고 하는 것은,
忠信之薄也 ; 인간들 사이의 정성과 믿음이 얇아져서 생긴 것이며
而難之首也 ; 인간관계에서 어지러움의 시초라고 할 수있다.
대체로 말하자면 禮라는 규율과 지침을 만들게 된 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믿음과 진심이 얄팍해져서, 전체 사회질서가 어지러워진 것이 원인이며, 그래서 사회질서를 바로 잡기 위하여 어쩔 수없이 사회규율로써 예절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강제 규율이 일어난 것은 이미 인간 품성이 타락하여 사회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前識者 道之華也 而愚之首也
前識者; 앞서 알려진 것들(仁義禮)은
道之華也 ; 도라는 것으로 겉치장한 말일 뿐이며,
而愚之首也 ; 어리석음의 시작일 뿐이다.
<前識者>는 앞서 이야기한 仁(어짐), 義(옳음), 禮(예절)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며,
노자가 말하는 무위적인 德이 아니고, 儒家에서 말하는 협소한 德의 개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是以大丈夫 居其厚而不居其薄 居其實而不居其華
是以大丈夫; 그러므로 참되게 성숙한 사람은,
居其厚而不居其薄 ; (드러나지 않은 도의 말없는) 두터움에 머무르지,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얇팍함에 머무르지 않으며,
居其實而不居其華 ; (도의) 실재에 머무르지, (일시적인)겉치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장부>는 단순히 <성인 남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를 아는 지성인> 또는 <지혜있는 선비>라는 뜻입니다.
<두터움에 머무른다>라는 말은 보이지 않고 알수는 없지만, 말없이 내면에 있는 도의 본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읍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표시가 나지 않고 말없이 머물러 있는 것이므로 두텁다라는 표현을 쓴 것 같읍니다.
<얇팍함에 머무르지 않는다>라는 의미는 겉치레 말로 드러내고 일시적인 행위로써 나타내지는 것을 얇팍함이라고 표현했읍니다.
故去彼而取此
: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앏팍한 행위와 의도적인 겉치레 말을 버리고, 드러나지 않은 도의 (말없는)두터움과 실제적인 알맹이만을 취한다.
진실되게 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외면적인 행동과 이론적인 겉치레 말은 절대 하지 않고, 말없이 깊은 내면 속에 있는 도의 본체에 머문다는 말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위는 이원적이며, 가식적이고, 항상 변하는 것으로써
진실된 덕행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된 사람은 이런 외면적인 것은 버리고, 항상 내면에 말없이 머문다는 것입니다.
이번 38장은 백서본 덕도경의 맨첫장으로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 중에서 노자의 도가계통사람이 공맹자 계통의 유가의 사상에 대해서 이념 논쟁을 하는 일부분을 엿볼 수가 있겠읍니다.
백서본에서 그 이전에는 없었던 덕경과 도경을 나누면서, 덕경을 맨 앞에 편집해 놓고, 유가의 덕이념을 의도적으로 비판하는 그 대표적인 논조의 글이 바로 이 38장이 된 것 같읍니다.
이 38장은 노자 도덕경의 고본인 곽점본에는 없는 글이므로,
원래 노자의 순수한 글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노자의 도의 관점에서 유가의 덕을 비판한 것이므로, 노자의 도덕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읍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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