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26장, 경박함과 조급함은 근본에서 벗어난 것이오.

2008. 7. 10. 11:17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문]

 

重爲輕根  靜爲躁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시이성인종일행            불리치중

 

雖有榮觀  燕處超然

수유영관       연처초연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輕則失本  躁則失君

경칙실본        조칙실군

 

 

[해 석]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이며,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임금이 되오.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종일 行하여도

짐수레의 무거움처럼 신중함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소.

 

비록 영화스러움을 보거나 아름다운 꽃구경을  할지라도

편안하게 근본에 머물러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소.

 

어찌 천하대국의 주인으로써 자기자신(언행)으로 인해

세상을 경박하게 만들수가 있겠소?

 

가볍게 처신한다는 것은,

곧 근본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조급하게 떠들어대는 것은 ,

곧 임금의 본분(本分)을 잃어버리는 것이외다.

 

 

 

[해 설]

이번 26장은 임금에게 직접 충언하는 대목인 것 같으며,

천하대국의 임금으로써 항상 내면의 중심에 뿌리를 두고,

신중하게 처신하고, 경박한 언행은 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모든 해석서와 주석 내용은 거의 비슷하여 논란 될 문장도 없으며 평이한 내용입니다.

 

重爲輕根  靜爲躁君(중위경근 정위조군)

重;무겁다, 爲; 되다. 輕; 가볍다, 根; 뿌리,근본, 君; 임군,남편

靜; 고요하다,조용하다,쉬다. 躁;조급하다,성급하다,시끄럽다.

 

重爲輕根;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이며,

무거움이란 신중하고 말없이 사려깊음을 의미하며,

가벼움이란 말이 많고 경거망동함을 가리키죠.

마치 나무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고 항상 그자리에 고정되어 나무의 생명을 오래동안 간직하고 있는 반면에, 나무잎이나 꽃들은 계절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것처럼, 사람의 언행도 신중하고 묵직한 것은 항상 근본에 중심이 잡혀 있어서 믿음직하고 신뢰가 가지만,

반면에 말이 많고 가볍게 행동하는 사람은 중심이 없이 가벼워 보여서 신뢰할 수가 없다는 것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또한 한사람의 마음을 보자면 그 사람의 내면은 움직이지 않는 묵직함(重)이지만, 밖으로 나타난 움직이는 마음은 나뭇닢같이 가벼움(輕) 그자체라고 볼 수 있읍니다.

따라서 내면의 무거움(重)에 주의가 고정된 사람은 근본에 중심이 잡혀 있는 실속(實속)있는 사람이고, 외면의 움직임에만 가볍게 따라다니는 사람(輕)은 내면의 뿌리에서 중심이 멀어져 있어서 속이 비어 있어 믿을수 없다는 속담도 있읍니다.

 

靜爲躁君;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임금이다. 

위의 重爲輕根과 비슷한 의미로써,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躁자는 조급함이나 성급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앞에 고요할 靜자와 대비되는 의미로서 '시끄러움'이라고 번역을 했읍니다.

조급함이나 시끄러움이나 비슷한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중함은 성급함의 주인이고, 침묵은 말이 많음의 주인이며,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왕이다"라는 의미를 전하는 말입니다.  

 

모든 소리의 바탕은 '소리없음'입니다.

'소리없음'이 없고는 어떤 소리도 나올 수가 없죠.

그래서 모든 소리의 왕은 바로 "소리없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소리 속에는 "소리없음"도 함께 포함되어 있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만 "들리는 소리"만 들 수 있지만,

"소리와 함께 섞여있는 '소리없는 바탕'은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이 "소리 없는 바탕"이 바로 그 소리를 듣는 것을 "아는 자"인 주시자입니다.

따라서 소리를 듣는다,라는 사실은 '소리없는 바탕'이 있기 때문에 소리를 듣는 것이죠.

소리없는 바탕은 주시자로써 항상 있지만,

소리는 생겼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므로 "고요함이 시끄러움"의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고요함은 항상 듣고있는 주인이요, 시끄러움은 왔다가는 손님일쎄"

"침묵은 뿌리요, 말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닢" 

 

是以聖人終日行(시이성인종일행) 不離輜重(불리치중)

是;이,이것,  離;떠나다,떨어지다. 輜;짐수레, 重; 무거움

 

是以聖人終日行;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종일 길을 가더라도.

不離輜重; 짐수레처럼 무거움(신중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짐수레 輜자는 옛날 중국의 왕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 출행을 하는 중에

군사들과 함께 행군시에 식량과 중요 전투 장비를 가득실은 짐마차를 끌고 가는데,

무거운 짐마차가 빨리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짐마차가 가는 속도에 맞추어서 전체 행렬의 속도가 따라가게 되어, 짐마차를  중심으로 전체군대행렬이 진행해 나가므로,

그 "무거운 짐마차같이 신중해야 된다"는 의미로 輜重이라고 표현한 것 같읍니다.

즉, 성인은 하루종일 일상생활의 활동을 움직이더라도 내면의 깊은 중심의 신중함을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雖有榮觀(수유영관)  燕處超然(연처초연)

雖;비록, 아무리~하여도. 榮;영화,영광,영예,꽃, 觀; 보다,보이게하다,나타나다.

處; 곳, 지위, 머무르다휴식하다.燕;편안하다,제비,잔치, 超;뛰어넘다,뛰어나다. 然;그러하다.

 

雖有榮觀; 아무리 영화로움을 보거나 아름다운 꽃구경을  할지라도

燕處超然; 편안하게 머므르면서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한결같다.

榮觀이라는 단어는 자기의 영화로움움을 본다는 뜻도 있고, 다른 측면으로 길을 가면서 눈을 홀리는 아름다운 꽃구경을 한다는 의미도 있어서 두의미를 함께 붙혔읍니다.

성인은 자기의 명예가 천하에 드날리거나, 길을 가면서 주변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본다고 하더라도, 항상 내면의 중심에 편안히 머물러서 있어서,그러한 대상적인 영예나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이 홀리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 한결같이 내면에 중심을 잡고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영예나 외부 아름다운 대상에는 관심이 없고, 항상 일상활동에서도 내면의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말씀입니다.

 

奈何萬乘之主(내하만승지주)  而以身輕天下(이이신경천하)

奈;어찌, 何;얼마나,어떻게,어떤,乘;타다,다스리다.

而;접속사,같다,말잇다. 以; ~로써(취급하다), 輕;가볍다.

 

奈何萬乘之主 ; 어찌 천하대국의 주인이

而以身輕天下 ; 자신으로 인해서 천하를 천박하게 할수 있는가?

萬乘이란 옛날 중국에서는 수레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일수록 국력이 강한 나라이며,

萬대의 수레를 보유한 萬乘之國이란  천하의 패권을 잡은 천하의 최대강국을 말하고,

萬乘之主란 천하의 패권을 장악한 대국의 왕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천하를 휘어잡은 대국의 왕이 가볍게 처신하게 되면, 천하도 그에 따라서 천박하게 출렁이며 변한다는 충고의 말입니다. 

아마도 왕에게 대국의 왕으로서 신중해야 된다는 충고같읍니다.

 

요즘도 어떤 지도자의 말투나 사소한 행동,습관, 심지어는 넥타이등 옷차림까지 주변의 사람들이 그대로 흉내내며 따라서 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습속인 것 같읍니다.

육십년대인가 칠십년대 인가에 나온 미국의 영화중에 미남배우인 그레고리 펙을 주인공으로 나온 모험영화장면이 하나 생각납니다.

지금은 그 영화 제목도 잊어 버리고 자세한 내용과 장면은 잘 생각이 안 납니다만, 몇가지 장면은 아직 기억이 됩니다.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고래잡이어선의 선장인 그레고리 펙 일행이 그당시 북극에 가까운 제정러시아의 수도항구에 배를 수리하기 위해 잠시 정박했다가 러시아 마지막 황실과 그 황제권력을 모반하려는 구테타 음모세력간의 모략싸움에 잘못 휘말려 들어가서 여러가지 모험을 하는 오락영화로 코메디와 액션,모략, 모험이 뒤섞여진 스틸버그류 모험영화와 비슷한 아주 재미있는 내용인데,

그 황실에 좀 덜떨어져 미성숙한 황태자,그리고 여러 대신들과 귀족부부들이 모두 모인 왕실파티 장면이 유머스러하게 나옵니다.

그 황태자가 즐거운 듯 웃으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대신들과 귀족들이 함께 따라서 껄껄대고 웃다가, 황태자가 갑자기 손가락을 세우면 즉시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그치고 심각하게 침묵하며, 또 황태자가 맘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으면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황태자가 손을 올리면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지는 장면인데, 황태자는 자기 행동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해 주고 동조하는 것을 아주 즐기는 어린아이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약간 머리가 돈 비정상상태인 황태자의 얼굴 표정과 손가락 움직임의 행동 하나 하나에 눈치를 보며 이끌려 다니는, 정신이 멀쩡한 정상인들인 고관대작과 귀족들의 일률적인 행동거지가 마치 끈으로 조정되는 인형극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그린 것이죠.

 

물론 이장면은 억지로 지어낸 연극이지만, 실제 이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아주 코믹하게 단편적으로 표현 한 것 같읍니다.

지금 현세상도 역시 지도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든 사람들이 관찰하고 따라들 하고 있으며, 또한 하찮은 음식습관이나 기호, 말투와 옷차림 같은 세세한 일까지 관심을 가지고 흉내내는 경향이 많읍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일상적인 행동과 말,생각은 그 조직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보아야 하며,

위의 문장은 바로 이러한 지도자의 행동과 말이 신중해야지, 그렇지 않고 경거망동하듯 가벼우면 그 조직 구성원들도 지도자의 언행을 본 받아 그 조직 자체 분위기가 천박하게 출렁이며 휘돌아 갈수있다는 충고입니다.

 

중심에서 벗어난 어떤 행동은 비조화상태이며, 그 상태는 어차피 조화를 향해서 다시 움직여야 되므로 역동적인 움직임의 반작용이 나오게 되어 결국은 조화로움을 향하여 진행 될 겁니다.

이러한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는 고통과 고뇌를 주는 기상불순상태를 거쳐야 하며, 씨앗을 뿌린 결과는 다시 성장하여 걷어드리는 과정이 반복되겠지요.

그러한 무상한 변화과정 속에서 변함없음을 구하는 것이 바로 도를 찾는 것입니다. 

 

輕則失本(경칙실본)  躁則失君(조칙실군)

則;곧,본받다,법칙, 失; 잃다. 本;바탕,근본, 躁;떠들다,조급하다,시끄럽다. 君;임금지위.

 

輕則失本; 가볍게 처신하는 것은, 곧 근본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躁則失君 ; 조급하게 떠들어대는 것은 ,곧 임금(지도자)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경박한 언행(言行)은 자기 중심을 잃어버리는 행위과 같으며,

조급하게 서두르고 말로 참견하는 일이 많으면 우두머리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대국을 다스리는 지도자는 중심에 뿌리를 두고 언행을 무겁게 가져야 하며, 너무 움직이고 말이 많으면 지도자의 원래 본분을 잃어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도의 입장에서는 아주 타당한 말이지만,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순히 현실의 실용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의 지도자에게는 좀 머리를 갸우뚱할 수도 있는 충고입니다.

그러나 이 도덕경은 어디가까지나 내면적인 도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며,

현대 일상사회의 관점에서는 자기자신의 기본적인 마음자세가 항상 내면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일러주는 가르침입니다.

-항상 중심을 잡고 신중하게 처신하며, 조급하고 경박하게 말하거나 행동을 하지 마라-  

누구나 어렸을 때에 읽어보고 익히 배운 추억의 국민 동화인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이의 지혜를 배워라, 라는 가르침과 비스름 합니다.

 

귀한 시간 내서  읽으시느라고 수고하셨읍니다.  -무한진인-